미중 전략경쟁의 민낯[베이징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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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계 뉴스 통신사인 로이터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비밀리에 벌인 작전 하나를 폭로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미 국방부가 실시한 이 비밀 작전은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이 효과가 없다거나 특정 성분이 포함됐다는 식의 루머나 가짜뉴스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산 백신인 시노팜이나 시노백의 예방 효과가 50~60%에 불과해 '물백신'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딱히 잘못된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이같은 여론전을 편 시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백신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당시 한국 정부 역시 코로나19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비판 여론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이는 미국과 유럽이 자국산 백신에 대해 자국 우선 공급 원칙을 세워 해외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백신 개발과 접종에 나선 중국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에게 자국산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며 '백신 외교'를 폈다.

중국이 자국 백신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두고 볼수 없었던 미 국방부는 X(옛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여론전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중동 국가들을 향해서는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 성분이 중국산 백신에 포함돼 있다는 내용의 가짜뉴스를 퍼트리기도 했다.

이같은 여론전은 일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당시 필리핀에서는 국민들이 접종할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 중국산이었지만 부정적 여론이 높아 접종률은 극히 미미했다.

이에 2021년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백신 접종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당시 1억 1,400만 명의 필리핀 국민 가운데 백신 접종을 완료한 국민은 210만 명에 불과했다.

이는 필리핀 정부의 목표치인 7천만명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당시 필리핀의 코로나19 감염자는 130만 명을 넘어섰고, 약 2만 4천여 명의 필리핀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강대국 전략경쟁의 희생양은 약소국과 그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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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가 폭로한 미 국방부의 비밀 작전은 경쟁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강대국의 추악한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당시 미 국방부 내에서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이같은 위험한 작전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렸다고 한다.

당시 해당 작전에 참여한 미군 고위 장교는 "우리는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라며 "우리는 어떻게 중국을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벌어지는 이같은 전략경쟁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힘없는 약소국과 그 국민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앞서 필리핀의 예처럼 공급이 딸리는데다 가격도 비싼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할 여력이 없었던 개발도상국들은 먼저 손을 내민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들여왔지만 미국의 여론 조작 탓에 이 마저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미 국방부의 비밀 작전을 전해들은 필린핀 정부의 전 보건분야 고문 니나 카스티요-카란당 박사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했나?"라고 반문하며 "미국의 선전 활동이 상처에 더 많은 소금을 뿌렸다"고 지적했다.

에스페란자 카브랄 전 보건장관도 "필리핀인들은 2021년 3월 처음으로 국내에 출시된 중국의 시노백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코로나19로 사망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언제든 강대국 전략경쟁 '희생양'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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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됐지만 미중 양국의 전략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두 강대국보다 힘이 약한 국가들은 어느 한쪽에 줄을 서도록 강요받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유지돼 온 '안미경제'(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도 이제 옛말이 된지 오래다.

현 정부들어 경제 역시 미국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어 일부에서 비판론이 제기되는 반면 미국 주도의 첨단 산업 공급망 재편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시행하며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미국 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장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법에 근거해 미국 정부로부터 64억달러(약 9조원)의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받개됐다.

현대.기아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중국산 전기차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틈을 타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또, 현대차의 미국 공장이 올해 말 완공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대상이 된다.

누가 봐도 미국에 줄을 댄 상황인데 현 시점에서는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후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미국내 첨단 산업 공급망 구축이 완료된 뒤 미국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데다, 중국 견제를 이유로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한국 기업들의 중국 사업은 위협받고 있다.

현재 미중 전략경쟁 속에 한국이 얻고 있는 이득을 결코 우방국에 베푸는 선의, 또는 가치 외교의 성과라고 착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당시 미 국방부의 비밀 작전 처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강대국은 언제든 한국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 '줄서기' 보다는 '줄타기'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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