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산하 4개 병원에 소속된 일부 교수들이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 등을 요구하며 집단 휴진에 돌입한 가운데 환자들은 "어떻게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를 두고 휴진에 나설 수 있냐"며 의료공백에 따른 불안을 호소했다.
우려했던 것만큼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부 환자들은 실제로 진료가 취소되는 등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서울대 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학교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일부 교수들은 17일부터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지난 6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교수 비대위)가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중증·응급 등을 제외한 휴진 강경 방침을 세운 데 따른 것이다. 비대위는 전체 진료교수의 과반이 휴진에 동참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병동은 텅 비고, 교수 진료실 문 앞엔 "외래 쉽니다"
집단 휴진 첫날인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어린이병원 1층 소아 비뇨의학과엔 대기 환자가 거의 없었고 암 병동 갑상선암센터, 혈액암센터 등도 텅텅 비어 있었다.어린이병원 1층에 있는 일부 진료실 앞에는 "외래 진료 휴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본관 순환기내과 앞 암병동 갑상선센터, 혈액암센터 앞 등 병원 곳곳에는 교수 비대위가 게시한 '휴진을 시행하며 환자분들께 드리는 글'이 붙어 있었다.
비대위는 대자보에서 "휴진으로 인해 큰 불편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며 "이번 휴진은 (교수로서의) 책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실한 외침이다. 이익을 지키거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진료를 쉬는 대신 오전에 서울대 의대에서 휴진을 다시 한번 결의하는 집회를 열고, 오후에는 '전문가 집단의 죽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비대위는 응급·중환자 진료, 진료지원, 기초의학교실을 제외한 진료 담당 967명 가운데 참여 교수의 비율은 54.7%(529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또 수술실이 없는 강남센터를 제외한 3개 병원의 수술실 가동률이 기존 62.7%에서 33.5%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집단 휴진에 따른 진료 일정 변경은 교수들이 직접 진행했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김영태 병원장이 집단 휴진을 불허한 데다가 병원 노동조합에서도 "진료 일정 변경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6개월 진료 기다리다 눈 실명"…흉부외과 진료 취소된 환자도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환자들은 실제로 진료가 취소되는 등 불편을 호소했다.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앞에서 이날 만난 제희연(77세·가명)씨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채 "5일 전에 갑자기 교수님한테 직접 문자가 왔다. '개인 사정으로 월요일(17일)에 휴진한다'고 하더라"며 "부동맥 등 심장이 안 좋아서 서울대병원을 30년 다녔는데 의정 갈등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씨가 보여준 휴진 안내 문자에는 "인근 병원에서 동일하게 약제 처방 받아서 드셔야 할 것 같다"며 "재진 날짜는 1개월 이내로 다시 잡는 경우 재휴진 가능성이 있으니 8월 16일 이후로 잡는 것을 권유 드린다"는 내용이 있었다.
안과 앞에서 만난 김계순(79세·가명) 씨는 "눈이 아파서 진료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의정 갈등으로 인해) 그렇게 오래 걸려서 6개월 만에 (병원에) 왔다"며 "진료 날짜를 기다리는 중이었던 보름 전에 눈이 아주 안 보이게 됐다"고 울먹였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실명 확인서를 받으러 왔다는 김씨는 "처음 휴진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서울대병원에서 이럴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환자들을 두고 이러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휴진 참여' 많지 않지만…"중증 환자는 어떡해"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한다고요? 나같이 약만 타는 사람은 괜찮은데, 다른 환자는 어떻게 하라고요."
이날 오전 11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분당서울대병원 1층 예약·수납 창구에서 만난 김모(72)씨도 불안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진료를 예약한 김씨는 병원에 도착한 직후 진료를 받고 곧바로 처방전도 받았다. 수납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였다.
김씨는 "병원에 안내문도 없고, 안내 문자도 오지 않아 교수들이 집단 휴진한 지 몰랐다"면서도 "나 같은 일반 환자는 교수가 없어도 동네 내과로 가면 되지만, 수술을 앞둔 환자나 중증 환자는 어떻게 하냐"고 우려했다.
이날 분당서울대병원은 실제 단체 행동에 나선 교수가 예상보다 많지 않아 혼란은 비교적 적었다.
응급실도 별다른 문제없이 운영됐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응급환자들은 막힘없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자녀의 팔이 골절돼 응급실을 찾은 김모(51)씨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사한테 진료를 받았다"며 "진료가 끝나고, 의사의 처방대로 의료진이 곧바로 아이의 팔을 깁스 해줬다. 불편 없이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병원 "24개, 중단 과 없어"…의협 내일 '전국 집단 휴진'
이 병원 관계자는 "휴진을 결정한 일부 교수들도 사전에 환자들에게 휴진 사실을 알려 헛걸음하는 환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진료과목은 모두 24개로, 진료를 중단한 과는 단 한 곳도 없다. 모든 환자들이 문제 없이 진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됐던 혼란은 없었지만, 집단행동에 동참한 교수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 10일부터 지하1층과 지하3층 등 병원 건물 일부에 '히포크라테스의 통곡'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노조는 대자보를 통해 "의사제국 총독부의 불법파업결의 규탄한다. 휴진으로 고통 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라고 주장했다.
대자보를 지켜본 입원 환자 한모(44)씨는 "개인과 단체의 이익보다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의사의 본분 아니겠냐"며 "아무리 명분이 정당하더라도 본분을 저버린다면 그 누구도 의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8일 대학병원 교수뿐 아니라 개원의까지 참여하는 '전국 집단 휴진'을 예고해 의료 현장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정부는 사전 신고된 휴진율은 4% 수준에 그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