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악동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지 어느새 10년. 악동뮤지션이라는 팀명은 악뮤(AKMU)로 바뀌었고, 두 사람은 각각 29살, 26살의 성인으로 자라났다. '기브 러브'(Give Love) '200%' '얼음들'까지 서로 확연히 다른 매력을 가진 세 곡을 타이틀로 삼아, 총 11곡으로 꽉 채운 데뷔 앨범 '플레이'(PLAY)로 범상치 않은 시작을 알린 악뮤는 그 후로도 많은 명곡을 탄생시켰고, 꾸준히 들리고 불리는 듀오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시작해 총 10개 도시 17회 규모로 진행한 전국 투어 '악뮤토피아'(AKMUTOPIA)를 성황리에 마친 악뮤가, 처음으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에 입성했다. 지난 15~16일 이틀 동안 서울 송파구 체조경기장에서 10주년 기념 콘서트 '일공브이이'(10VE)로 관객을 만났다.
이찬혁은 앙코르 멘트 때 "우리 눈물샘을 자극했던 어린이 합창단 여러분"이라고 호명했는데, 이때 합창단이 신이 난 듯 손을 들고 그 자리에서 팡팡 뛰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관객석에서는 귀여움을 참지 못하는 탄성이 터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찬혁은 "어린 친구들만 보면 갑자기 막 애를 낳고 싶더라"라고 했고, 이수현은 "콘서트에서 그게 할 말이야?"라고 반문해 폭소가 터졌다.
오케스트라·브라스·밴드 세션과 함께한 '10VE'는 가창만큼이나 연주에도 귀 기울이도록 구성된 공연이었다. 언덕과 잔디밭을 기본으로 한 무대는 노래에 맞춰 다채로운 연출을 했다. 두 사람의 화음이 듣기 좋았던 '사소한 것에서' 무대는 댄서들과의 합도 관람 포인트여서인지 뮤지컬처럼 느껴졌다.
이수현의 '리바이'는 '벤치'와는 정반대 분위기였다. 피아노와 금관악기 소리가 돋보였던 '리바이' 무대에서는 깃털이 풍성한 커다란 부채였다. 빨간색을 포인트로 한 조명은 곡의 강렬함과 관능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화룡점정은 이수현의 곡 소화력이었다. 능숙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표현력, 전달력, 기교 삼박자가 흐트러짐 없었고, 마치 뮤지컬 넘버를 보는 기분이었다. 맑고 또렷한 음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능한 장르가 훨씬 더 넓어 보였다.
뜨거운 에너지를 여유롭게 발산한 '리바이'와 정반대 결의 곡이었던 '얼음들'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깊은 푸른빛을 메인 컬러로 한 '얼음들'은 얼핏 경쾌한 듯하지만 한편으로 위태롭게 들리는 피아노 연주와, 두 사람의 무게감 있는 보컬이 백미였다. 이때 마치 창살처럼 무대 전체를 감싸는 주황색 조명이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언급한 노래 외에도 '못생긴 척' '낙하' '물 만난 물고기' '라면인건가'까지 10곡 무대를 한 후에야 악뮤는 관객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거대한 잔디 언덕 세트와 관련해 이찬혁은 "되게 편한 마음으로 오셨으면 했다"라며 "악뮤의 노래만 들으러 오는 그런 자리라기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듬뿍 충전하고 사랑을 채워가는 공연이 되었으면 해서 이렇게 신경 썼다"라고 설명했다.
이수현은 "10주년 공연인 만큼 저희 데뷔 앨범 1집 '플레이'가 이렇게 막 산속에서 숲속에서 사는 요정 같은 그런 콘셉트였다. 여러분들은 모르셨을 수도 있지만 저희 마음은 그런 걸 콘셉트로 해서 많이 재현해 보려고 했다"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같은 시간이라고도 부연했다.
두 곡 모두 가창력과 감성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고 봤는데,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시적인 가사는 정확하게 청자에게 닿았고, 그 노래에 깔린 감정선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와 목소리가 전부인 것처럼 들렸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에서는 노래 자체에 몰입시키는 힘이 굉장했다. 화려한 춤이나 퍼포먼스가 없더라도, 악기 한두 개와 목소리만으로 충만한 노래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진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꾸민 무대도 있었다. 'K팝스타2' 때 만들어 발표한 '크레셴도' '지하철에서' '외국인의 고백'과 정규 1집 수록곡 '작은별'을 메들리로 부를 때, 그들은 동굴 안에서 다소 예스러우면서도 깜찍한 의상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찬혁은 네모난 안경과 체크 셔츠를, 이수현은 알프스 소녀처럼 레이스 두건과 원피스를 착용했다.
그 후 '주례'가 나타나 이번 공연이 악뮤와 팬 악카데미의 '서약식'임을 분명히 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10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악뮤(AKMU)로서 악카데미(공식 팬덤명)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을 굳게 약속하겠습니다. 이에 본 주례는 이 자리에 계신 악카데미 여러분들을 대표하여 두 사람의 아름다운 서약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서약을 축복하는 노래는 아이유가 불렀다. 아이유가 등장했을 때 객석에선 비명에 가까운 큰 환호가 나왔다. 아이유는 '너의 의미'와 '블루밍'(Blueming) 2곡을 불렀다. "저도 여러분처럼 이 자리에 앉아서 공연 보고 싶은 팬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그는 "뭔가 마음이 내 식구가 잘된 것처럼 너무 대단하다"라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하고 싶은 건 편안하게 노래하는 것"이라며 10년 전의 자신에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단다. 빛나는 순간들을 더 즐겼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이수현은 미발매곡 '리멤버'(REMEMBER)을 홀로 불렀다. 이후 "지금의 저를 너무 잘 나타내주는 곡"이라고 소개한 '후라이의 꿈'을 또다시 솔로로 소화했다.
공식적인 마지막 곡은 '그때 그 아이들은'이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 '기브 러브'(Give Love) '롱디' '러브 리'(Love Lee) '사람들이 움직이는게' '오랜 날 오랜 밤' '시간을 갖자'까지 앙코르곡만 7곡에 달했다. 악뮤는 28곡으로 꽉 찬 3시간을 관객에게 선물했다.
악뮤는 첫 체조경기장 공연을 통해 이틀 동안 총 2만 1천 명의 관객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