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대 교수들이 내주 '집단 휴진'을 잇따라 예고한 가운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14일 입장문을 내고 "환자 생명을 외면하는 명분 없는 집단휴진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 2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발표 직후 병원을 대거 이탈한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와 동네 의원까지 합세하기로 한 집단행동을 두고 "넉 달을 불안과 고통 속에서 참고 버텨온 환자와 국민은 그야말로 참담함과 절망뿐"이라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집단휴진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휴진하는 의사들과 개원의 명단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언급하며 "의사 진료거부로 인한 환자 피해와 병원 손실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무엇보다 국민 대부분이 지지하고, 정부에 의해 확정된 의대 증원을 의사들만 끝까지 반대하며 '백지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억지 중의 억지"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말 보건의료노조가 여론조사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국민 1천 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6%는 의사단체 등이 집단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도 89.3%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이를 들어 "필수의료를 살리자면서 당장 치료받아야 할 필수환자들을 팽개친 채 필수·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개혁 대화를 거부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증·응급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치료 적기를 놓치게 만드는 집단휴진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조는 의사 집단휴진에 따른 진료변경 업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 의료 관련 직역 8만여 명으로 구성된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다.
최근 서울대병원 등 '무기한 휴진' 방침을 밝힌 이른바 '빅5' 병원 일부에서는 소속 간호사·직원들이 진료·수술 일정 변경 등의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5대 대형병원을 이르는 빅5 병원들의 일평균 외래 환자는 전공의 이탈 이후에도 적게는 약 7천명에서 최대 1만 2천 명에 가까운 수준이다. 집단휴진이 현실화되면 교수 1명당 최소 수천 건의 예약 일정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집단휴진으로 병원에서는 진료과마다 무더기 진료변경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진료·수술 연기와 예약 취소는 환자들에게도 고통이지만, 끝없는 문의와 항의에 시달려야 하는 병원 노동자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이라며 더 이상 의사들의 '욕받이' 노릇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또한 "의사 집단휴진에 반대하는 병원노동자들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진료변경 업무에 협조할 수 없다"며 "진료변경 업무를 거부하는 병원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있다면 노조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의 동의 없이 예정된 일정을 임의 변경하려면 의사들이 직접 그 업무와 책임을 모두 감당하란 취지다.
정부를 향해서는 이달 내 '완전한 의·정 갈등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노조는 "환자와 보건의료노동자에게 극한의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고 있는 의정 갈등이 더 이상 길어져선 안 된다"며 "6월 내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와 의사 집단휴진을 완전하게 해결하고 진료를 정상화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달 내 복귀 전공의에겐 어떤 불이익도 없게 행정조치를 내릴 것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등 열악한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의사단체를 포함해 필수·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개혁 논의기구 구성을 완료하고 정상 가동할 것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각 병원들에 대해서도 "말로만 '환자 중심 병원'을 내세우지 말고 환자 진료를 정상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는 휴가사용 강제, 임금삭감 및 체불, 인력 축소, 구조조정 등 의정갈등으로 발생한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그 어떤 행위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