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민주주의·헌법 위배' 논란에도 당헌·당규 개정 착수

국회의장·원내대표 선거에 당원표심 20% 반영하도록 당규 개정
대선 출마 당대표 사퇴시기 조절, 기소시 당직정지 폐지 등 당헌도 손봐
'이재명 대권가도'에 초점 맞춘 당헌 개정이라는 논란
당 안팎서 커지는 우려 목소리…"당원·민주당·이재명 모두 멍들 수 있어"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대의민주주의의 원칙과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원권 강화를 골자로 하는 당헌·당규 개정에 나섰다.
 
민주당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를 통해 국회의장 당내 경선과 원내대표 선거에 권리당원 투표를 일부 반영하도록 당규를 개정했다.
 
국회의장단 경선은 국회의원 중 본회의 진행 등을 책임질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는 선거이고, 원내대표 선거 역시 당내 국회의원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국회의원만 선거권을 가진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같은 방식이 최근의 정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원내 선거에도 당심을 반영하는 방식의 도입을 추진해 왔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김민석 의원이 당원 10% 반영으로 운을 띄웠고, 이후 20%, 50%까지 거론되다가 최종 20% 반영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과, 당직자의 부정부패 혐의 기소 시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에 대한 개정 작업도 진행됐다.
 
민주당 당헌에 의하면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위해 대선 1년 전까지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민주당은 상당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는 대선 1년 전에 사퇴가 어려울 수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당무위의 판단으로 그 이후의 기간에 당 대표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하는 당헌 개정안을 마련했다.
 
당무위는 당직자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자동으로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의 경우에는 폐지를 의결했다.
 
정치 검사 등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발생할 수 있는데 기소만으로 당직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판단에서다.

당헌 개정안은 오는 17일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치면 최종 확정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회하며 의사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당헌·당규 개정 작업은 당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일으키고 있다.
 
우선 원내 선거에 당심을 반영하도록 한 당규 개정의 경우 대의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들이 이미 총선을 통해 자신의 뜻을 원내에 전달해 줄 대표자를 선출했는데, 그 대표자들 간의 선거에 또 다시 당심을 반영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지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민주당 경선에서 당심이 원했던 추미애 의원 대신 우원식 의원이 선출된 직후부터 강성당원을 중심으로 당규 개정의 목소리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논의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사안을 성급히 밀어붙였다는 비판마저 사고 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로 분류되는 김영진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회의원은 당원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된 이후 민주당만으로 당선되신 건 아니지 않느냐"며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할 때 당원들이 선출했는데 원내대표와 의장을 선출할 때까지 (당원 비율 반영을) 하게 되면, 원내대표와 의장이 전체 국민을 대표해 나가면서 일을 해야 되는데 매일 일부 당원의 눈치만 보고, 그 강한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과연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당권대권 분리규정 개정과 기소 시 당직 정지 폐지 등 당헌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재명 대표를 지나치게 고려한 것이라는 오해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대표는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직 연임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일 1년 전인 2026년 3월까지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민주당은 대표직 사퇴 시한을 조정할 수 있는 사유로 조기 대선이나 전국 단위 선거 등을 꼽고 있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단축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선 1년 전이라는 대표직 사퇴 시한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26년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가 꼽히는데, 이 대표가 이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판단을 당무위가 내리게 되면 사퇴 시한을 늦출 수 있게 된다. 이 두 사례의 경우 모두 이 대표를 위한 당헌 개정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경우 당직을 내려놓게 한 당헌의 폐지 또한 이 대표와의 관련성이 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앞선 이날 쌍방울 대북 송금 관련 제3자 뇌물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등 여러 재판을 받고 있어 '기소=당직정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같은 당헌 개정이 이 대표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 당무위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년 전 당권·대권 분리 예외 조항은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귀책 사유로 인한 무공천 약속을 폐기하는 것은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낮추는 것"이라며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의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민주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도 "당의 헌법인 당헌당규를 임의적으로 개정하는 것 자체가 해당 시에는 달콤한 사탕이라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강성 당원들에게 좋을 것 같지만 그 강성 당원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전체적으로 멍들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