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첸백시 없는' 첸백시 긴급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10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첸백시 측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종민 기자
지난해 정산 자료 미제공을 이유로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한 그룹 엑소 멤버 첸(김종대)·백현(변백현)·시우민(김민석) 측이 1년여 만에 다시 SM엔터테인먼트를 겨냥했다. 이번엔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 개최를 알리는 메일은 10일 오전 8시 55분에 도착했다. 기자회견 7시간 전 '당일 통보'다.

행사 공지는 장소 대관, 다른 일정과 겹칠 가능성 등을 고려해 빠르면 한 달 전, 늦어도 일주일 전에는 미리 안내하는 편이다. 물론 사안의 심각성과 시급함의 무게에 따라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도 한다. 첸백시 소속사 INB100은 정말 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어제 회견에 참석한 취재진에게까지 '긴급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득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통 수수료율 5.5% 약속'을 말하기 위한 긴 사족

우선, 기자회견 초반 상당 부분을 지난해 첸백시가 벌인 분쟁 관련 이야기를 하는 데 썼다. 첸백시 측 법률대리를 맡은 이재학 변호사는 "재계약서를 제시받은 변백현 아티스트는 8차례나 계약 조건 조율을 요구했지만 SM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고, 특히 SM은 '백현이 네가 계약해야 다른 멤버들이 더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 아직 재계약이 발동하기 전이니 재계약은 언제든지 미리 취소할 수 있다'라는 말로 압박과 회유를 하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변백현 아티스트는 당시 군 복무 중이었다"라고 말했다.

어떤 계약에서든 양쪽 모두 각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애쓴다. 되도록 더 많은 멤버가 한 기획사 안에 있는 것이 그룹 활동에 수월하므로, 원소속사인 SM에는 백현뿐 아니라 엑소 멤버 전부를 대상으로 '재계약을 유도할' 유인이 분명했다. 계약기간 7년을 기본으로 하는 '표준계약서'를 따르는 첫 계약과 달리, 재계약부터는 이전보다 아티스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다. 여기서 의견이 대립하면 결별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

이 변호사 설명대로 백현이 계약 조건을 8차례나 조율하기를 원했는데 SM이 거절했다면, SM과 재계약을 맺어야 할 이유는 더더욱 희석된다. 원치 않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으면 양측이 갈등할 소지가 크고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고자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협상'과 '조율'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백현은 SM과 스스로 재계약했다. '아직 재계약이 발동하기 전이니 재계약은 언제든지 미리 취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취소하지 않은 채로. 개인적으로 '압박과 회유'를 느꼈다 할지라도 재계약을 맺지 않을 수 있었다.

SM 출신 연예인 중 다른 기획사에서 새출발하고 무리 없이 그룹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가 이미 여럿이다. 같은 그룹인 엑소에서 찾아보더라도 디오는 SM과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오랜 기간 함께한 매니저가 세운 신생 기획사로 옮겼으나, 아무 문제 없이 엑소 활동을 하는 중이다.

백현뿐 아니라 첸백시 3인 모두가 SM과 계약 관계가 살아있기 때문에, '재계약을 맺지 않고 그룹 활동만 계약하거나 협업 관계를 맺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첸백시와 SM 양쪽은 공격적인 표현과 언어를 동원해 공방전을 벌였지만, 공동 합의문을 발표해 사태를 봉합했다. 이미 맺은 재계약을 포함해 부당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문제 제기한 후, 공동 합의를 이룬 이상 이날 기자회견의 상당 부분은 지난해의 동어 반복이었다.

거창한 홍보, 부족했던 질의응답

왼쪽부터 첸, 백현, 시우민.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자회견에선 이 변호사가 INB100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에만 40분이 소요됐다. 상황을 더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노력일 수 있으나, 이성수 SM CAO(A&R 최고 책임자)와 차가원 회장이 나눈 녹취록을 한 줄 한 줄 읽는 방식이 최선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기자회견 공지를 하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미리 공개했다면 기자회견 참석 전 취재진이 사안을 더 잘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의응답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INB100 측의 입장과 달리 사안의 심각성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질의응답 초반부터 '당일 기자회견 통보 이유'에 관한 질문이 나온 까닭이다. 오전에 공지해서 기자회견까지 열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나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을 때, 이 변호사는 "저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묵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SM-첸백시 공동 합의문 전제 조건이 '음반·음원 유통 수수료율 5.5%'였는데, SM이 이 부분을 지키지 않은 채 첸백시 3인 개인 활동 매출의 10% 지급만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부당"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변백현 아티스트의 주변 아티스트들로부터 변백현 아티스트 측이 매출액 10%를 부당하게 SM에게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말을 전달해왔기 때문에, 저희 아티스트들과 회사의 명예를 훼손당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라고 부연했다. 첸백시 측에게 부정적인 내용의 이야기가 업계에 돌면서 '명예훼손' 우려가 있기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해명이다.

앞서 첸백시 측은 SM에 '음반·음원 유통 수수료율 5.5%를 지키지 않는다면, 개인 활동 매출 10% 지급은 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내용증명으로 보냈으나 두 달이 되도록 아무 답신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SM의 '눈속임 합의'를 고발하는 기자회견" "이번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다소 거창한 홍보 문구와 달리 질의응답 시간은 짧았다. 질문하고자 하는 취재 열기가 뜨거웠지만 주최 측이 준비한 식순을 순서대로 진행하는 데 열중했기에, 결국 많은 취재진이 질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회견 후 이 변호사에게 추가 질의를 했을 때도 답변은 의뢰인이 있는 곳에서만 해야 한다는 답만을 받았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첸백시가 불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두 달 동안 SM의 응답이 없었고 공론화를 원했다면 더 기민하게 움직이면 안 됐을까. 엑소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른 사안을 삼켜버릴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첸백시 측이 거듭 강조한 "엑소와 엑소 팬을 위한" 일이었을까.

게다가 사안이 '긴급'하고 '중대'하다고 판단했다면 첸백시의 참석은 기본 전제로 했어야 할 부분이다. 특히 백현은 단순 소속 아티스트가 아닌 INB100의 설립자로서 책임 있는 위치다. 첸백시 없는 첸백시 기자회견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예고된 다른 일정을 뒤로 한 채 참석한 취재진에게, 첸백시 측 기자회견은 내용이나 운영 면에서 많은 의문을 남겼다. 갑작스러운 통보, 당사자의 불참으로 처음부터 삐걱댔다. 하지만, 1년 만에 재점화된 사태와 관련해 취재진의 의문을 해소할 시간을 넉넉히 마련했다면 어느 정도 수습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기자회견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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