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최대 산하기관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설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준감위 설치가 골자인 '경기주택도시공사의 설립 및 운영 조례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경기도의회 김태형 의원은 "자정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조례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GH 측은 "별도의 감시기구 설치는 명백한 경영권 침해"라며 피감기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선 양상이다.
이에 CBS노컷뉴스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주장을 따져봤다.
근거로 제시된 두 사례…GH "준법심사 적용 불가한 사례들"
김 의원은 "준법심사규정을 만들어 놓고 실제 위원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 감시기구를 둬 공공기관으로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례 개정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GH는 지난해 3월 자체적으로 준법심사규정을 제정했다. GH 업무 수행 과정에서 법적 위험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내부 준법심사를 진행하는 제도다. GH 이사회에 부의되는 사항이나 도와 도의회 등 대외기관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 등이 심사 대상이다.
김 의원의 주장은 GH가 사업 시행 과정에서 준법심사를 받지 않거나 도의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자체 결정에 따라 '중대한' 사업 내용을 변경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하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면서 그는 두 가지 사업을 사례로 제시했다.
하나는 101대 1 분양 경쟁률로 관심을 끌었던 화성 동탄2 A94 블록 공동주택사업이다. 2019년 100% '후분양' 계획으로 도의회 심의를 통과했으나, GH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공정률 80% 선의 분양으로 변경해 지난해 10월 분양공고를 했다. 김 의원은 후분양에서 선분양 형태로 사업방식이 바뀐 중대한 사업 변경이며, 따라서 이사회에 부의하기 전에 준법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용인 플랫폼시티의 사업비 증액과 관련된 사안이다. 2019년 도의회 의결 당시 5조 9646억원이었던 사업비는 지난해 실시계획 단계에서 8조 2680억원으로 38.6%가 늘었다.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사업비 증가 규모가 20%(올해 3월, 30%로 상향 개정됨)를 상회했기 때문에 GH가 준법심사를 받은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쳐 도의회 재심의를 받았어야 했다는 게 김 의원의 논리다.
이에 대해 GH는 두 사례 모두 애초에 준법심사 규정을 적용할 수 없었거나, 적용할 필요가 없던 사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의원이 GH 자체 준법심사 규정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억지로 맞지 않는 사례를 내세워 경영 자율성을 옥죄려 한다는 것이다.
규정 도입 이전 이사회 재의결, 사업비 증가율 계산도 오류
GH에 따르면 동탄 사업방식 변경 사례의 경우 시기적으로 준법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비록 '공정률 100% 후분양'에서 '공정률 80% 수준의 후분양'(법률상 골조공사가 완료된 경우 선분양이 아닌 후분양으로 분류됨)으로의 변경 공고를 낸 시점이 지난해 10월이었지만, GH 이사회에서 재의결된 시기는 2022년이었다.
이는 동탄 사업방식 변경안은 준법심사 규정(지난해 3월 제정)이 시행되기 전에 확정됐음을 의미한다. 종합하면 김 의원의 주장은 준법심사 규정이 생기기 전 합법적 절차에 따라 확정된 사안을 두고, 준법심사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한 모양새다.
플랫폼시티 사업비 증가 사례의 경우는 이사회 부의 사안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준법 심사 자체가 불필요했다는 게 GH측의 설명이다.
'지방공기업 신규 투자사업 타당성 검토 매뉴얼'에 따른 이 사업의 총 비용 상승률은 물가상승률과 토지보상비 등을 제외하면 15.29%로, 이사회가 재검토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정상적인 범위내에서의 비용 상승이었다. 김 의원이 주장하는 사업비 증가율 38.6%는 계산 방식이 잘못된 셈이다.
GH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까지 받아 봤지만 모두 절차와 내용상 문제가 없는 사안들로 확인됐다"며 "이미 조례 개정안 발의 전에 사실 관계들이 확인됐고, 외부 감시기구 설치의 명분이 없는데도 왜 이렇게 외부 감시기구 설치를 강행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심의 범위 '사업·업무 전반' 설정…개발정보 유출 우려도
GH는 또 별도의 준감위 설치로 인한 과도한 경영권 침해와 기밀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조례 개정안을 보면 준감위의 심의·자문 대상은 '공사의 업무 및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 '도의회 상임위원회 보고 및 의결 사안 중 계획 등의 변경에 관한 사항' 등으로 규정돼 있다. 도의회 심의를 거친 사업은 물론, GH 업무 전반으로 외부 감시 범위를 확장했다.
김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영 침해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의회 동의를 받았던 사업을 중심으로 변경 사항이 있을 때 세밀하게 더 살피자는 것"이라며 "도지사의 감독 권한을 강화해주려는 보조적인 의미로 준감위를 설치하자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GH는 과도한 경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GH 관계자는 "기존 준법심의나 이사회 심의 규정에서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도 충분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지나치게 심의 범위를 확장하며 추가 심의기구까지 만들려는 것은 GH를 일방 통제하려는 월권 시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GH는 외부 감시기구를 통해 민감한 공공개발 정보의 유출을 우려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10인 이내 규모인 준감위는 4분의 3 이상이 학자, 변호사, 감정평가사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아울러 모든 심의 내용과 결과는 도의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사자료 제출 과정에서 비공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H와 경기도는 로펌 4곳(GH 의뢰 1곳, 경기도 의뢰 3곳)의 법률자문을 받아 본 결과 개정안에 위법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향후 안건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강경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GH 관계자는 "도에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까지 갈지는 우리가 판단할 순 없지만 도의회에서 안건이 최종 통과되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례 개정안은 오는 11일 도의회 상임위에서 심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