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美테네시주에 '올인'하고 있는 까닭은?

LG전자 미국 테네시 공장 전경. LG전자 제공

LG가 세계 최대 전기차, 생활가전 시장인 미국에서의 신(新)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넘기 위해 테네시주에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 트윈(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생산기지를 차곡차곡 구축해나가고 있다.
 
LG전자가 지난 2018년 말 테네시주 북부 클락스빌에 생활가전 생산 공장을 완공한데 이어, LG화학도 이 부근에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최대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현재는 기초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40km 떨어진 스피링힐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GM(제너럴모터스)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 제2공장이 지난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처럼 LG가 테네시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테네시주는 조지아, 앨라바마 등 8개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어 일단 교통과 물류에 효율적이다.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고 있는 멕시코와도 지리적으로 가깝다.
 
여기다 GM, 폭스바겐, 닛산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북미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곳을 생산 거점으로 정한 터라 전기차 배터리와 양극재 등의 사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LG는 이곳 공장 가동에 재생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 ESG 경영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실제로 LG전자 테네시 공장은 지난 2021년부터 사용 에너지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2021년 실질 탄소배출량을 전년 대비 63%나 줄였다.
 
미국 테네시 주정부가 지난 2018년 LG전자 테네시 공장 가동을 기념해 공장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에 'LG HIGHWAY' 도로명을 부여했다. LG전자 제공

뿐만 아니라 LG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향후 통상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이곳 테네시 전진 기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먼저 LG전자 테네시 공장에서는 현재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고 있지만 올 미국 대선 결과 여하에 따라 무역 장벽이 더 높아질 조짐이 나타날 경우 이곳에서 TV와 냉장고 등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제 LG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때 세탁기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자 이곳 테네시에서 현지 생산하는 전략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우회한 전력이 있다.
 
LG전자 테네시 공장의 손창우 법인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올 대선에서 특정 후보가 당선돼 통상 이슈가 발생한다면 비단 냉장고뿐만 아니라 TV 등 다른 제품을 여기서 생산할 수도 있다"며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느냐에 따라 대응을 조금씩 다르게 준비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LG전자의 테네시 세탁기·건조기 공장은 125만 제곱미터(㎡) 대지에서 연면적 9만4천㎡만 사용하고 있다. 현재 부지에 공장동을 3개 더 지을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에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현재 LG전자의 멕시코 공장 주변에 있는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조달한다는 계획인데,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부품은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적용받아 관세 부담이 작다.
 
LG화학이 건설중인 클락스빌 양극재 공장 모습. 워싱턴특파원 공동취재단

LG화학이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짓고 있는 북미 최대 규모의 배터리 양극재 공장도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수혜는 물론 다변화되는 시장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간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선 LG화학은 1단계로 이곳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연간 6만톤 생산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오는 2026년부터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를 본격 양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매년 고성능 순수 전기차(EV, 500km 주행 가능) 약 60만대분의 양극재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LG화학은 양극재 생산 초기부터 전기차·배터리 고객사와 개발부터 공급망까지 협력함으로써 리스크를 최대한 줄였다.
 
이미 LG화학은 GM과 50만톤 이상의 양극재 장기공급 포괄적 합의를, 토요타(Toyota)와는 2조 9천억원 규모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LG화학은 향후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한편, 고객 수요 증가 추이에 따라 생산 규모를 확대해 오는 2027년에는 배터리 소재 부문 매출을 20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LG화학의 클락스빌 양극재 공장은 갈수록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수혜 조건도 모두 맞추고 있다.
 
LG화학과 고려아연의 합작사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KPC)가 울산에서 생산한 전구체를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 모로코 등 미국과 FTA 체결 국가에서 광물·전구체를 조달하는 공급망을 구축해 고객사들이 IRA의 전기차 보조금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IRA는 배터리 핵심 광물을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할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
 
시작은 양극재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양극재 공장 반경 500km 안에 대부분의 배터리 OEM 공장이 있고, 조지아 등에서의 원재료 조달이 용이한데다 향후 북미산 폐배터리 처리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배터리 '밸류 체인'의 중심이 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장 부지도 넉넉해 향후 시장 변동 상황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력도 충분하다.
 
지난해 12월 양극재 공장 착공식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미국이 IRA를 만든 것은 중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배터리 공급망을 막자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대선 등으로 인한 정치 변화 상황이 오더라도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는 IRA 보조금 때문이라기보다는 고객사의 요구와 폐배터리 처리 등 에코 시스템을 고려해 사업을 다각화하려고 구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얼티엄셀즈 제2공장에서 현지 직원들이 배터리 생산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1위 자동차 업체 GM이 설립한 두 번째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으로 올해 3월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얼티엄셀즈 생산 공장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여기다 LG에너지솔루션도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일시적이며 북미 시장을 비롯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본격 성장기에 돌입하는 때 선제적 진입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선 것이다.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위치한 얼티엄셀즈 제2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법인으로 지난 3월부터 본격이 가동하기 시작해 GM의 3세대 신규 전치가 모델용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연간 고성능 전기차 약 60만대에 쓰이는 배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영득 얼티엄셀즈 제2공장 법인장은 "특히 제2공장은 LG가 30여년의 배터리 사업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역량을 총동원해 양산 한 달 만에 수율 목표를 달성했다"고 귀띔했다.
 
얼티엠셀즈는 이미 지난 2022년 11월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에 제1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미시간주 랜싱에도 제3공장을 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엘티엄셀즈 제1·2·3공장에 대한 투자액은 총 9조원에 육박한다. 이뿐만 아니라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그룹·혼다·스텔란티스 등과 함께 합작 공장을 운영 및 건설중이다.
 
한편 LG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지능형 공장(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에 자율주행 물류로봇을 비롯한 공정 자동화 공정을 도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율을 기록하고 있고, LG화학도 고품질의 양극재 생산을 위해 데이터 실시간 예측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3D 기반의 가상 환경에서 설비 및 공정 설계를 사전에 검증한 뒤 생산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