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이혼 항소심 판결 나흘 만에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며 법원 판단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로 SK그룹의 명예가 실추됐다고 보고 더 이상의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 직접 나서 법원 판단 '정면 비판'
4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전날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이혼 항소심 판결 나흘 만에 첫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이 이들 앞에서 첫 공식 입장을 밝혔다는 것은 더 이상의 이미지 훼손을 막고 흔들림 없이 향후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판결이 있던 지난달 30일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이 이미 입장문을 통해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이 직접 한번 더 법원 판단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이번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그룹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경유착으로 성장했다는 판결…뼈아팠을 것"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노 관장의 선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SK그룹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룹 성장에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이 도약한 계기가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이고, 여기에는 1988년 결혼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SK는 1992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가 정경유착 논란이 일자 1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이후 SK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말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지분 23%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인수했다.
리더스인덱스 박주근 대표는 "그룹의 수장이면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정경유착으로 그룹이 성장했다는 판결이 너무 뼈아팠을 것"이라며 "최근 10여년 간 최 회장이 강조한 가치가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인데, 그런 노력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서 재산 분할금 줄여야하는 상황"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지금 최 회장이 가지고 있는 SK 주식회사 지분을 건드리지 않고는 사실상 1조3808억원의 재산 분할금을 낼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대법원에 가서 금액을 줄이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약간의 급박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 받는다면 아직 상장하지 않은 SK실트론 주식을 먼저 팔고 남은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SK㈜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SK㈜ 주식 일부를 팔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가진 주식의 상당 부분이 이미 금융권 담보로 잡혀 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SK㈜ 주식 5.45%를 담보로 4895억 원을 대출받았다. 남은 SK㈜ 주식 12.28% 중 4.33%는 다시 SK실트론 주식의 총수익스와프(TRS)를 위해 질권 설정됐다. 다시 말해 주식을 다 팔아도 빚을 갚고 나면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 중 담보가 없는 지분은 7.49%(약 1조원)뿐이다. 배당금(연 약 650억원)과 퇴직금, 예금 등을 합쳐도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액을 한 번에 지급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SK㈜ 주식을 처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해도 현재 최 회장이 행사할 수 있는 SK㈜ 지분은 25.57%에 불과하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상황에서 지분을 더 팔기 부담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3년 외국계 운용사인 소버린은 SK㈜ 지분을 14.99%까지 끌어올리면서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해 최태원 회장 퇴진 등을 요구한 전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