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은 역대급 폭염으로 한 해 50만 명이 사망하는 시대를 다룬다. 전력난과 물가 폭등, 슈퍼 산불과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폭염이 불러온 지구의 절망적 현실을 추적한 르포르타주다.
기후 저널리스트인 제프 구델은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의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2024년 5월 멕시코 남부 연안에서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83마리가 높은 나무에서 사과처럼 우수수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2021년 미국 태평양 북서부 연안에서는 새끼 독수리 수십 마리가 불구덩이처럼 달궈진 둥지 위에서 투신했다. 2019년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50만 명에 육박했다.
생태계가 뜨거운 불구덩이에 가까워지며 전 지구적 시스템의 붕괴 위기에 놓였다. 인간 사회도 심각한 폭염으로 산업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평균 기온이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 GDP의 약 1퍼센트인 3000억 달러(약 4조원)가 증발한다. 폭염 아래 야외 노동이 불가하고 설비 고장이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2020년 미국이 폭염에 따른 노동자 생산성 저하로 1천억 달러의 손실을 가져왔고 2050년에는 5천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인간이 먹고 사는 생존의 위협, 물가의 폭등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후 위기 음모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고 지적한다. 화석 연료 기반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 기온을 바꿀 수 있지만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2024년 현재 82%로 여전히 증가세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 에너지 회사들은 탄소배출량 감소 약속을 철회하거나 바이오연료 생산 지원을 중단하는 등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화석연료 비중이 OECD 상위 국가로, 화석연료 투자 2위 국가다. 한국은 에너지 비용 증가로 1인당 43만 원의 비용(IEEA)을 추가 지불해야 하지만, 문제는 폭염 청구서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단적 이변 원인 규명 과학'을 창시한 지구물리학자 마일즈 앨런은 "머지 않아 기후과학이 더 발전해 폭염 살인의 직접적 원인을 밝힐 수 있게 되면,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EU를 중심으로 강력한 규제를 예고한 상태다.
저자는 "구워지든지, 도망치든지, 아니면 팔을 걷어 붙이고 싸우라"고 말한다. 폭염 살인의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제프 구델 지음 |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508쪽
케임브리지대학 마이크 흄 교수는 극단적 기후 정치와 왜곡된 기후 과학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는 "지구 온도 내리기와 탄소 중립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라며 기후 위기를 낭설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대규모 산불과 대홍수, 심각한 가뭄, 등 펄펄 끓는 지구의 온도를 내리기 위한 행동 촉구와 탄소 중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종말론적 기후 위기 문제 앞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게 됐다며, 그 이면에 정치적 시야를 협소화시키고 환원주의적 사고에 갇히게 하는 '기후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1년 시작돼 2년간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 내전의 원인을 두고 '시리아 테러 사태의 발단은 기후 변화'라는 식의 언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기후와 관련된 가뭄이 내전으로 비화한 시리아의 초기 불안을 부채질했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정치 집단들이 기후 변화가 시리아 내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한 심각한 가뭄 때문에 시리아 농민 노동자들이 터전을 잃었고, 그들이 도심지로 모여들면서 정치적 불안을 야기했다는 것이 골자다. 심지어 장 클로드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유럽에 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을 '기후 이민자' 또는 '기후 난민'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이러한 식의 틀짜기(framing)는 관련자들이 기후 변화라는 인과적 서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해 논점을 돌리는데 사용됐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기후 환원주의'의 결함과 위험성을 지적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변종 '기후주의'(Climatism) 이념의 출연을 알린다.
기상 현상이 역사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경제적·생태학적 체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성립된다는 맥락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후 변화 억제'의 정치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후주의는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저탄소 기술이 화석연료가 이룬 편리를 금세 대체할 수 있고 인류의 기술이 지구의 기후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고 지적한다. '기후를 지키려는 자'와 '지구를 파괴하는 자'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이 일부 정치당국과 시민 활동가 등의 수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종말론적 기후주의는 결국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 정치 활동을 촉진하거나, 도리어 공포감과 두려움, 체념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며 수많은 '마지막 기회'들을 억누를 위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마이크 흄 지음 | 홍우정 옮김 | 풀빛 | 2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