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원(院) 구성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원회를 독식할 기세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은 딱히 대응할 만한 수단이 없다. 국민의힘은 관례를 내세우며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민의(民意)'를 언급하며 여지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라리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게 하고, 21대 국회처럼 민주당이 민심의 역풍을 맞는 순간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상임위 독식 시사…무기력한 국민의힘 "입법 독재" 비판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2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22대 원 구성과 관련해 민주당은 국회의장뿐만 아니라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고 선언하며 총선 민의에 따라야 한다고 강변 중"이라며 "171석의 민주당이 300석의 국회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총선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고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앞서 이날 오전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은 3주 전부터 국민의힘과 원 구성 협상에 나섰다"라며 "국민의힘은 시간만 끌고 있는데 민주당은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구성하는) 관례도 존중하지만 관례보다는 법이 우선"이라며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동시에 단독으로 원 구성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여야의 합의가 불발되더라도 171석의 민주당은 단독으로 원 구성을 끝낼 수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22대 국회 임기 첫 집회일에 선출하고, 상임위원장은 첫 집회일로부터 3일 이내에 뽑는 것이 원칙이다. 22대 국회 첫 본회의가 오는 5일 열리기 때문에 7일에 상임위원장 선출이 이뤄지는 것이 원칙상 수순인데,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동의 없이도 홀로 본회의를 열고 홀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는 구조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민주당이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입법 독주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며, 그간 원 구성 협상의 관례를 존중하라고 촉구하는 수준에 그친다. 추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은 제1당이,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나눠맡는 것이 순리"라거나 "운영위원장을 여당이 맡아온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 때부터 확립된 관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핵심 법안 추진과 정부 견제를 위해 자신들이 법사위·운영위를 가져가야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만찬을 겸한 2+2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재확인했을 뿐, 진전은 없었다.
'현실론 < 강대강 대치'…"심장 내줄 수 있나" "野, 민심 외면 받을 것"
국민의힘 내에서는 소수 여당의 한계를 인정하고, 민주당에게 원 구성 과정에서 일부를 양보하면서 국정동력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현실론이 나오기도 한다.가령, 법사위는 국민의힘이 맡더라도 190석에 달하는 야권이 쟁점법안을 패스트트랙 절차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만큼 포기하되, 국정 뒷받침을 위해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는 사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사위와 운영위는 21대 국회 후반기에도 국민의힘이 맡았던 상임위이기에 당내에서는 눈 뜨고 빼앗기는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22대 들어 특검법 정국 등 야권의 공세가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 사수에 대한 요청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은 우리에게 심장을 달라하고 하는데, 심장을 주면 다른 것은 협상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우리가 그러면 심장을 내줄 수 있나"라고 말했다.
결국, 여야가 이견을 좁힐 기미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라리 민주당이 상임위를 독식하게 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21대 국회 초반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지만, 각종 실책으로 민심의 이반을 겪다가 2년 뒤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점을 상기하는 것이다.
영남권 재선 의원은 "민주당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말려들지 말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생각"이라며 "민주당이 21대 때 임대차 3법부터 검수완박법을 강행하다가 정권을 뺏겼는데, 협치 없이 독주하는 모습은 금방 민심의 외면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