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고 전공의 '택배알바'중…"명예회복이 복귀 우선 조건"

응급의학과 수련 전공의 2명…"우리들도 답답하다"
전공의 대부분 20~30대…신혼·육아에 생활고 호소
"환자 버리겠다는 것 아냐, 다른 환자 돌보겠다" 사직 요구
"의사, 각자 입장 차이가 커 한마음으로 움직이기 어려워"

연합뉴스

정부가 병원을 떠난 지 100일이 넘어가는 전공의들에게 '유화책'을 던지며 복귀를 거듭 촉구중이다. 정부는 전공의들을 위해 병원을 통해 개별상담을 진행하고 이탈 기간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것이라며 유연한 처분을 암시하는 등 연일 돌아오라 손짓하지만, 전공의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런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10여 명을 상대로 최근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함구하며 거절했다. 이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체념하기도 하고, "개인의 목소리가 전공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칠까 두렵다"며 몸을 사렸다.

다만 두 명은 어렵사리 속내를 밝혔다. 서로 다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서 수련하다 현재는 병원을 떠나있는 30대 중반의 전공의들이다. 이들은 현 의정갈등 상황에 대해 한목소리로 "전공의들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까닭에 실제 생활고를 호소하기로 했다. 지난 2월 19일부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지, 3일이면 104일. 이들의 솔직한 심경은 '기약없는 답답함'이다.

'의사가 생활고?'…"있던 돈 까먹고, '개룡의'는 알바하며 버텨"


서울의 한 '빅5' 병원 레지던트 2년차인 전공의 A씨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대다수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짚기조차 어렵다"며 "여행을 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쿠팡 배달이나 택배 상하차 등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병원을 떠났어도 의사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느냐는 물음에 A씨는 "출신에 따라 다르다"며 "엘리트 코스를 걸어서 의대에 갔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다"고 전했다.

"특히 개천에서 용 난 의사라고 해서, '개룡의'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그래요.  저희 과에서도 개룡의들은 대리 기사도 하고 쿠팡 이츠 배달도 하고, 의사단체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먹고 살고 있어요."

또 다른 대형병원에서 레지던트 3년차인 전공의 B씨도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주변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요즘 전공의들이 20~30대라서 신혼부부거나 아이가 있는데, 부모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경우라면 생계 걱정을 특히나 더 할 수밖에 없어요."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를 맞은 2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생활고가 심해지자 대한의사협회는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의협은 전공의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하는 '생계지원사업'을 진행중인데, 지난달 27일까지 전공의 약 2900명이 신청했다.

또 의협이 전공의들에게 보건의료정책 개선책을 듣기 위해 실시한 '수기 공모 사업'에 같은 날 기준 약 700명이 접수했다. 의협은 선정된 전공의에게 상금 50만 원을 지급한다.

아울러 의협은 선배 의사가 매달 전공의 1명에게 25만 원을 무이자나 2% 이하의 저금리로 빌려주는 '선배 의사와의 매칭 지원사업'을 마련하고 지난 23일부터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이 사업에는 선배 의사 약 270명, 전공의 약 390명이 신청했다.

전공의들은 이같은 지원 사업도 실제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A씨는 "몇십만 원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전공의들이 많다 보니까 생활할 만큼 지원되지는 않는다"며 "1억 원이 있더라도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들에게 나눠지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2차병원 분배 '긍정'있지만…"원하는 치료 못 받아, 올바른가?"


전공의가 떠나온 대형병원들이 환자들을 2차 병원 등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B씨는 "우리 병원 응급실은 현재 평상시 환자의 30%만 받는데, 나머지는 2차 병원이나 준종합병원으로 분배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3차 중증 대학병원에서 보지 않아도 될 환자들은 알아서 분산되고 정말 대학병원급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만 본다"고 의료현장을 설명했다.

이어 "원래 가야 했을 방향으로 보이기도 한다"면서 "정말 응급실에 와야 할 중환자만 오게 되니 그런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대거 빠진 의료현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B씨는 "전문의 선생님들이 젊었을 때 했던 고생을 다시 하는 것이고, 우리 같은 젊은 수련 신분의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대학병원이 무너지고 있다"며 "이대로는 오래 갈 수 없고 그러자면 전문의를 늘려야 하는데, '몸값'이 비싸니 병원의 경영이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씨는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면서 "환자가 원하는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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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어 "빅5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은 환자도 억지로 지역으로 가도록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도 "지금도 병원 주변에 '환자방'(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 주변에 방을 구해 거주하는 것)을 구할 정도로 서울의 병원들을 희망하는 채로 지역 환자들이 계속 서울로 향하면 장기적으로는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수련병원 211개에 공보의와 군의관 973명을 동원했다. 또 지금까지 2000억 원이 넘는 예비비를 투입했다.

하지만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도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 예산을 대폭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복귀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며 손짓하고 있다.

정부 복귀 촉구…"젊은 의사들 이미 '악마화', 대규모 복귀 어려워"


이같은 정부의 손짓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의협이 지난달 30일 서울 덕수궁 앞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여해 '무너진 의료정책 국민도 의사도 희망 없다'는 팻말을 함께 들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00일 동안 세금 1조 원을 투입했다는 내용의 보도에 대해 "그만 후려치라"며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는 월평균 330시간 근무했고, 397만 원을 받았다. 100일이면 1323만 원, 1만 명으로 계산하면 약 1323억 원"이라며 "혈세만 1조 원이라니, 병원에서 가장 말단인 그것도 최저 시급을 받던 계약직 사원 일부가 사라졌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병원이 전공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대한민국 의료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외면하며 뭉개던 것은 아닐까"라며 "수련이라는 미명하에 젊은 청년들을 짓밟고 착취하며 금자탑을 쌓아 올릴 게 아니라 진작부터 지불해야 했던 사회적 비용은 아니었을까"라고 비판했다.

취재진과 인터뷰한 전공의들도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전공의들이 돌아올 기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A씨는 또 "전공의 중에는 '이제 전공의 안 할 거니까 면허나 제발 빼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환자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환자를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사직서를 받아달라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다만 "정부가 재협상 테이블을 만든다면 전공의들도 슬슬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반면에 B씨는 "지금 상태로는 증원 규모가 줄어들더라도 전공의들이 돌아갈 것 같지 않다"고 말하고 "사실 큰돈을 벌어보지도 못한 20~30대 젊은 의사들이 이미 이 사회에서 '악마화'됐다"고 씁쓸해 했다.

"전공의에 따라 '제 갈 길 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기도 해요. 30대 중반이 넘어선 전공의들은 서둘러 전문의를 따야 하기 때문에요. 그래야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거든요. 의사들은 각자 입장 차이가 커서 한마음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워 보여요."

'소명 의식도 다 빼앗겼다'는 B씨는 "전공의들의 명예와 마음을 회복시킬 '강력한 카드'가 있어야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부의 '선복귀' 요구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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