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기쁜소식선교회 소속의 한 교회에서 발생한 여고생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 교단이 운영하는 합창단 단장과 단원을 추가 구속하면서 수사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 합창단을 탈퇴한 관계자들은 사망사건을 둘러싸고 교단과 합창단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합창단 단장·단원,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변경할 듯
2일 법조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그라시아스합창단 단장 A(52·여)씨와 단원 B(41·여)씨를 지난달 27일 구속했다.송종선 인천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이들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 등은 지난달 15일 인천 한 교회에서 숨진 여고생 C(17)양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앞서 C양과 함께 지내던 신도 D(55·여)씨의 학대로 C양이 숨진 것으로 보고 그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D씨는 올해 3월부터 지난달 15일까지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던 C양을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D씨의 범행 경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교단 설립자의 딸이자 합창단장인 A씨와 단원 B씨도 학대 범행을 한 정황을 확인하고 지난달 25일 이들을 서울에서 체포했다.
경찰은 또한 C양의 사망에 D씨뿐만 아니라 A씨 등의 학대 행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도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A씨 등은 최근 경찰 조사에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D씨는 지난달 15일 오후 8시쯤 "C양이 밥을 먹던 중 의식을 잃었다"며 직접 119에 신고했고, C양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시간 뒤 숨졌다.
'종교단체 조직적 은폐 우려'에 경찰 '분리 송치·신속 수사' 행보
경찰이 D씨를 송치한 뒤 A씨와 B씨를 추가 구속한 것을 두고 매우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경찰은 진범과 공범이 확인될 경우 이들을 모두 수사한 뒤 일괄 검찰에 송치한다. 부득이 구속 기간 만료로 추가 수사가 어려울 때 송치 시기를 분리한다.그러나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최초 구속한 D씨를 체포한 지 8일 만인 지난달 24일 검찰에 송치했고, 다음 날인 25일 A씨와 B씨를 체포하고, 27일 구속했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의 피의자 구속 기한이 10일인 걸 감안하면 매우 빠른 조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종교단체 내에서 벌어져 조직적 은폐 가능성이 높은 만큼 피의자간 '입 맞추기' 등의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신속 수사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이름도 몰랐다"…교회 측 해명 다 거짓말
실제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 16일 기쁜소식선교회 측은 곧바로 C양이 발견된 교회 내 방을 공개하면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당시 교회 측은 숨진 C양의 어머니가 올해 1월 남편과 사별한 뒤 딸을 지인인 D(구속)씨에게 맡겼으며, 이후 C양과 D씨가 이 교회 내 마련된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고 설명했다. 또 C양이 평소 교회 안에서 D씨 말고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 내부자들도 C양의 이름조차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양은 이 교회에 숙소를 둔 그라시아스 합창단 단원이었으며, 지난해부터 합창단 공식 공연 무대에 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합창단 전원은 외부 공연 일정을 제외하고 늘 이 교회에 숙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교회 측은 C양과 합창단 사이의 연관 관계를 감추기에 총력을 다했다. 교회 관계자는 C양이 발견된 방이 합창단 숙소 근처일 뿐 합창단과 무관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 합창단을 탈퇴한 전 단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C양이 발견된 방은 합창단 내 '부부'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합창단장인 A씨와 단원 B씨가 구속되면서 교회 측의 해명은 모두 거짓말로 판명됐다. 경찰은 A씨가 D씨를 통해 C양의 학대 사실을 보고 받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단 홍보수단이었던 합창단…인원 충원 어려워지자 '폐쇄적 운영'
A씨가 단장으로 있는 그라시아스합창단은 1990년대 후반에 구성한 '기쁜소식선교회 성가중창단'이 모태다. 이후 이들은 '기쁜소식합창단'으로 개명했다가 2000년 2월 지금의 '그라시아스합창단'으로 재차 이름을 바꿨다.교단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교세가 쇠퇴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포교 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합창단을 조직했다. 운영 초반 자체 신도들로만 구성됐던 합창단은 2000년대 들어 전문 음악인을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명성을 쌓았고, 핵심 포교조직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합창단원 가운데 주부가 많아 해외공연 참석이 어려워지고, 단장의 독단적인 운영이 이어지면서 합창단 구성이 어려워지자 대전에 음악전문 대안학교를 설립, 주로 이 학교를 졸업한 신도의 자녀들을 단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이에 따라 합창단원 평균 연령이 낮아졌고, 단원 대부분이 기존 신도의 자녀들로 채워지면서 '합숙 형태'로 운영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창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단원 공고를 내고 있지만 사실상 지원자도 이 대안학교 출신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C양 역시 이 교단이 설립한 대전의 대안학교 학생이었다. C양의 어머니와 언니 모두 이 교단의 신도였다.
'감시와 통제' 반인권적으로 운영된 합창단…도주 아니면 탈퇴도 못해
합창단을 탈퇴한 전 단원들은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매우 반인권적으로 운영됐다고 입을 모은다. 또 C양의 죽음과 관련해 추가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탈퇴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 합창단은 조직적인 '감시와 통제' 아래 운영된다. 단원 전원이 사건 발생 장소인 기쁜소식선교회 인천지역 교회에 거주한다. 이들은 평상시 '개인 외출'도 허용되지 않으며,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교회 내에서 연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 모두 별도 직업이 없으며, 단원으로써 받는 급여도 수십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단원들은 합창단을 탈퇴하는 건 사실상 '도주'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가족들이 이 교단에 소속됐을 경우에는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2022년 8월 교회를 탈출했다가 납치·감급됐던 전 단원 E(20대·여)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씨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원으로 소속돼 5년 넘게 해당 교회에서 지내다가 2022년 8월 몰래 교회를 탈출해 서울 관악구 지인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며칠 뒤 교회 신도와 E씨의 어머니와 언니 등이 E씨를 승합차에 태우고 합창단 숙소가 있는 교회로 납치했다가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하진우 판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감금·공동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된 E씨의 어머니(56)와 언니(28)를 비롯해 또 다른 신도 등 6명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E씨 어머니 등 6명 전원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다. 이 항소심 첫 공판은 지난달 29일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달 21~28일 항소심 재판부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1심 선고 직후 검찰이 별도 항소하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이들이 '항소 의지'를 꺾은 배경에도 합창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탈퇴자들 "합창단 내 구타 만연…모두 단장 지시로 이뤄져"
합창단 탈퇴자들은 합창단 내 구타 행위가 만연했으며, 모두 단장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한 탈퇴자(여)는 "단장이 머리에 피가 흐를 정도로 단원을 때리는 걸 봤다"면서 "그 정도로 다쳐도 병원으로 데려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회고했다.그러면서 그는 "단원 모두 합창단에 갇혀 지내면서 단장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결국 '내가 맞을 짓을 했구나. 단장님이 나를 사랑해서 때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면서 "시기나 질투, 미움 등 일반적인 조직 내에서 가질 수 있는 감정조차 생기지 않을 만큼 단장의 지배가 강력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탈퇴자(남)는 "단장 A씨의 폭력은 직접 때리거나, 다른 단원에게 지시해 집단 구타하는 방법, 자신이 직접 때린 뒤 다른 사람이 때렸다고 믿게 만드는 방법 등 3가지 형태가 반복됐다"며 "남성이나 여성 단원 모두에게 예외없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탈퇴자가 수십명에 이르지만 C양이 숨질 때까지 수면 위로 나오지 않은 것은 폭행을 당해도 병원조차 못 가기 때문에 폭행을 증명할 증거를 얻기 어렵고, 자신의 피해를 공식화하면 신도인 가족의 압박과 교단의 회유가 이어지기 때문"이라며 "차라리 가족, 교회와 인연을 끊고 잠적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교회 또는 합창단과 관련된 다른 인물들도 C양 학대에 가담했는지 등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