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도 돌려줄까?" 서울대 그놈…추적하고 기록하라[싸우는 사람들]

['디지털 성범죄'와 싸우는 사람]
추적단 불꽃 원은지 에디터 인터뷰

추적단 불꽃 원은지 에디터의 뒷모습. 원 에디터 제공

"추적단 불꽃은 후원이나 지원 없이 하는 활동입니다. 생계를 위해 '저널리즘'과 접목했습니다. 국가가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 문제들, 피해자의 목소리가 재판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이게 제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에디터는 추적하고 기록하며 싸운다. 범죄자의 은신처인 텔레그램 안에서 그들의 악행을 목격하고, 증거를 모아 신고하며, 피해자의 이야기와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를 통해 알린다.

함께 활동했던 '불'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큰 변혁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기 위'한 다음 행보로 정치판으로 떠나고 난 뒤에도 그는 피해자의 곁에 남아 취재하고 보도했다. 당시 그는 '제2의 N번방' 엘을 쫓던 중이었다. 원 에디터는 "정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한 사람의 일상을 되찾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꼈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사건은 '중대한 성폭력 범죄'…"22대 국회, 피해자 목소리 듣길"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23일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을 "중대한 성폭력 범죄"로 규정하며 "여죄를 철저하게 수사하고 중형이 선고되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미성년자에 한했던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은 2021년 7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3년 가까이 서울대 졸업생 박모(40)씨와 강모(31)씨 등이 동문 등을 상대로 허위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사건이다. 원 에디터가 주범 박씨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 수는 61명이다.

"검거가 어렵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피해자 60여 명 중 자신이 피해자인 줄 모르는 분도 있었을 거고, 알아도 대처 방법을 몰라 막막했던 분도 있었을 거예요. 가해자 한 명을 검거함으로써 공범 수사도 할 수 있게 됐고 추가 피해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 에디터가 첫 팬티 거래 때 주범 박씨와 나눈 대화 내용. 원은지 추적단 불꽃·미디어 플랫폼 얼룩소 제공

약 2년, 원 에디터가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주범 박씨를 잡기 위해 그와 대화를 이어간 시간이다. 2022년 7월 제보 메일을 받은 그는 서울대 출신 아내와 결혼한 30대 남성으로 위장해 박씨의 텔레그램 방에 입장했다. 오랜 대화로 신뢰를 쌓은 원 에디터는 '팬티'를 미끼로 박씨를 유인했고,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원 에디터에 따르면 당시 박씨는 자신의 하반신을 찍어 보내며 "(팬티) 내일 줄 수 있어?"라고 재촉하고, 동문 후배를 두고 "나중에 이X도 돌려줄까?"라며 허위 영상물 제작·유포를 가벼이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들이 고통받은 시간은 더 길었다. 서울대 졸업생 A씨가 피해 사실을 인지한 것은 2021년 7월. 경찰은 그간 4차례나 빈손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텔레그램 측이 수사기관에 협조하지 않고 서버가 해외에 있어 추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피해자들이 서울고등법원에 낸 재정신청이 인용되며 수사가 재개됐다.

"이(서울대) 사건은 서울경찰청에서 맡아서 해결됐던 경우라고 봐요. 보통의 불법합성물 제작 및 배포 사건은 대부분 일선 경찰서에 배당됩니다. 수사관 한 명당 사건을 120건가량 맡고 있어 우선순위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 인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도 많아서 오랜 수사와 추적이 힘들기도 하죠. 전담 수사 인력을 늘리고, 나아가 전담 부서를 확충하는 방안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박씨 검거 장면. 연합뉴스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 등을 제작·반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M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딥페이크 처벌법'으로 기소된 71건 중 유죄는 70건에 달했으나 그 중 절반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실형은 다른 성범죄와 함께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직 음란물 합성만으로만 실형이 선고된 건 4건에 그쳤다.

원 에디터는 "불법합성물 제작·유포는 텔레그램에서 오래전부터 있던 범죄다. 피해자가 수천 명은 될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피해자들을 불러 어떤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사건이 'N번방'? 본질 호도 안돼"

원 에디터는 이번 사건을 '서울대 N번방'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위 영상물 온라인 유포가 성착취물 못지않은 피해를 만들지만, 두 사건의 차이를 인지하고 각각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더 많은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의 제작과 배포입니다. 이번 사건은 성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이고요.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또, 딥페이크 불법합성물 범죄라고 올바른 명칭으로 부를 때에야 더 많은 피해자가 용기있게 나설 수 있고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지인능욕' 표현을 지적했다. "'지인'이라는 것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지인이지 피해자의 인생에서 존재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개인 간의 사소한 문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능욕'은 가해자의 관점의 표현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건을 접할 시민에게 "관련 주제로 강연을 갔을 때 자기도 이런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만연해 있는 범죄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함께 싸우겠다는 말이 피해자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이길 기초 체력을 만들어 준다"고 당부했다.

여러 방송에 출연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면서도, 원 에디터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만큼 잠재적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제 N번방 사건 추적 당시에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기도 했다. "가해자들에게 위협받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은퇴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며 "정신건강에 좋은 않은 것을 계속 봐야 한다는 점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싸우고 있는 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피해자들이 회복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 피해자분과 식사를 했는데 '이제 쉬러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하는 피해자의 얼굴이 그동안 못 본 너무 밝은 표정인 거예요.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일을 이래서 계속 해왔구나'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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