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넘어온 '채 상병 특검(특별검사)법안' 재의표결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재의결에 필요한 이른바 이탈표 '매직 넘버'가 17석에 이른 만큼 야당은 장내외 여론전과 함께 의원들 개개인을 설득하는 등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이탈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가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투표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이탈표 '매직 넘버'는 17표…여론전 토대로 '양심' 호소하는 민주
27일 현재 국회 재적의원 총 인원은 296명인데 이 중 윤관석 의원은 구속된 상태다. 재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이기 때문에 특검법 최종 처리를 위해서는 295명 중 197명 이상이 가결표를 던져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개혁신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무소속 등 범야권을 모두 합해도 180석이므로, 재적의원 전원이 출석한다는 전제하에 법안이 다시금 통과되려면 국민의힘 내에서 17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현재까지 김웅·안철수·유의동·최재형·김근태 의원까지 5명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로는 여론전, 원내에서는 여당 의원들을 향한 양심 호소전을 펼치며 이탈표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엔 서울역 앞에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주최한 장외 집회에는 1만여명이 참석해 특검법을 처리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다음 날에는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TF'가 주최한 팩트체크 기자간담회를 열고 특검법안의 법리적 정당성을 다시 짚어보는 등 이론적인 부분 또한 보강했다. 이날에는 초선 당선인들이 과천에 위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통신사실 확인 자료가 보존 기한 1년이 지나 삭제되기 전에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전과 함께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서는 읍소에 나섰다.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던 박주민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 전원에게 찬성에 표를 던져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표결은 무기명으로 진행된다"며 "국민을 위해 양심에 따라 표결에 임하고 용기를 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의정활동을 통해 친분이 있는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나 찬성표를 당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낙선·낙천한 21대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양심선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활용, 양심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본회의가 다가올수록 이른바 양심선언에 나선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내심으로 갈등하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가능성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채 해병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尹 엄호하며 '표 단속' 국민의힘…통과시 22대 국회 시작 전부터 타격
반대로 특검법안을 방어해야 하는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대통령을 엄호하며 부결을 위한 '이탈표 단속'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은 부당한 압력에 의한 수사 지휘에 대한 개입 등에 대해 의연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국민에게 대통령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인정을 받은 분"이라며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전날 성일종 사무총장이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인가"라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특검법안이 통과될 경우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이탈 움직임을 강력하게 단속할 수밖에 없다. 특검법이 처리되면 윤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을 뿐더러, 총선 참패의 충격이 사라지기도 전에 여당에서 17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온다는 것은 향후 주요 변곡점마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의 정국 주도권을 마냥 민주당에 빼앗길 수만은 없다는 판단도 총력 방어전의 근거 중 하나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할 때 저희들은 참석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할 것"이라며 "(본회의까지) 남은 기간 왜 우리가 이렇게 (특검법안을) 처리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를 별도로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이탈표 설득'에 맞서 마지막 날까지 의원들 한 명, 한 명을 지켜나가겠다는 의미다.
정국 주도 위해 "22대서 계속 추진" 외치는 민주…'거부권' 방어선 지키는 국민의힘
민주당은 재의표결이 부결로 마무리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계속해서 법안 처리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이날 "5월 30일이 22대 국회 개원일인데, 개원일에 맞춰서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다"며 "전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과 함께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의원총회에 부쳐 의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여전하고, 지난 총선을 통해 의석을 늘린 만큼 추진 동력 또한 충분한 만큼 법안 발의를 통해 정국을 계속해서 주도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는 21대와 달리 여당에서 낙선·낙천자 이탈표를 기대하기 쉽지 않지만, '매직 넘버'가 8표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볼만 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연금개혁과 관련해서 21대 국회 막판 소득대체율 44%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총선 표심을 통해 드러난 민심에 충실하겠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원대대표 회동 후 추 원내대표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외면하는 특검과 연금, 민생 등을 모두 민주당이 챙기겠다는, 이른바 '통 큰'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인 셈이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부결로 '단일대오'를 확인한 후, 주요 현안을 모두 22대 국회로 넘겨 반대 논리를 좀 더 보강할 방침이다. 채 상병 특검의 경우 수사 중인 점을, 연금개혁안의 경우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따로 떼어 놓고 논의할 수 없는 점을, 민생회복지원금의 경우 지급 효과와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점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