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향해 묻고 싶은 것은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우리가 지금 괜찮은가'하는 것입니다. 답은 불행히도 명확합니다. 지금 우리는 파국적 수준의 기후 변화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기후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오늘의 '법정 B컷'은 지난 21일 열린 기후소송의 두 번째 공개 변론 날로 가보겠습니다.
청구인들이 '안정된 기후에서 살아갈 권리'란 팻말과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는 꽃말을 가진 마리골드를 함께 들었던, 바로 그날입니다.
"2030년 이후는 어쩌나"…국가가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
헌재는 2020년에서 2023년 사이 제기된 청소년·시민·아기 기후소송과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담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는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만큼 감축한다'는 목표가 설정돼 있습니다.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도요.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들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2030년까지임에도, 감축이 될지 보장되지 않고, 정부가 2030년 이후의 감축 목표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2024.05.21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中 |
청구인 측 정부는 경제와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감축 목표를 더 강화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지금 감축을 늦추면 오히려 우리 산업과 경제의 국제 경쟁력이 상실되고 더 큰 손실이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기후변화로 침해되는 국민의 생명, 건강, 자유는 헌법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높은 위상의 법익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합니다. (중략) 따라서 이 사건 심판 대상 감축 목표와 기본 계획은 법의 형량 기준에 비춰 볼 때도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였습니다. 2030년 감축 목표가 부족하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2030년 이후를 살아갈 세대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결과를 발생시킵니다. 2030년까지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됨으로써 더 큰 기후 피해가 발생하는 건 물론이고, 탄소예산 소진으로 인해서 2030년 이후에는 말 그대로 급정거와 같은 과도한 감축 부담이 전가되고 자율권 전반에 침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말했던 '이시적(異時的) 자유권' 침해의 문제입니다. |
독일 헌법재판소는 2021년 자국의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때 독일 헌재가 꺼내든 개념이 이시적(異時的) 자유권, 즉 '서로 다른 시대의 자유권'입니다. 결국 2031년 이후의 목표치를 전혀 정하지 않은 것은 결국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 그들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입니다.
"실천 가능한 목표 세우고,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
반면, 정부 측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40%는 파리협정에 근거한, 도전적 수준의 목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높아 단기간 감축도 어렵다고 맞서죠. 높은 퍼센트보다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행하고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보장 체계도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2024.05.21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中 |
정부 측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6%에 달하고 배출 탄소의 70% 이상이 에너지 산업과 제조업 부문에 집중돼 있습니다. 기술 개발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생산 기반을 다시 정비해야 해 단시간에 감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급격히 높일 경우, 기업들의 경제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어 기본권 보호를 위한 계획 설정이 오히려 또 다른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우려가 존재합니다. 파리 협정은 5년마다 전 지구적 이행 점검인 GST를 실시하고 있고, 2년마다 당사국의 경영 투명성 보고서인 BTR을 제출하도록 해 투명한 이행 점검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매년 계속된 이행 점검 체계가 작동할 예정입니다. 탄소중립 기본법 제9조와 제13조에 따라서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가 매년 연도별 감축 목표와 국가 기본 계획의 이행 현황을 점검하고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있으며,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 각 부처에 감축 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이행 보장 효과가 발생한다는 정부 측의 주장. 이에 대해 헌법재판관들이 청구인 측의 생각을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2024.05.21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中 |
문형배 헌법재판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이행보장 수단으로 이해관계인 측(정부)은 파리협정상 5년 주기의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 2년 주기의 격년 투명성 보고서(BTR) 제출RHK 점검을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목표에 관한 범지구적 이행 보장 체계가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의견은 어떻습니까. 청구인 측 파리협정은 각 나라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 강제력은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저희가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집행을 보장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보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인데, 파리협정에서는 점검만 하고 권유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집행보장 규정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 여전히 국내법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시죠. 청구인 측 네, 법적 구속력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
청구인 측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었죠. 헌법재판관들은 정부 측에도 직접 질문을 던집니다. 현재의 정부 정책이 과연 충분한지 말이죠.
2024.05.21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中 |
김형두 헌법재판관 2031년부터 2050년 감축목표와 경로에 관한 법률 유보 문제, '법률로 이것을 정할 것인가'하는 부분을 물어볼게요. '2031년부터 2050년까지 그 동안 우리나라가 파리협정의 절차적 기준을 준수한다' 이런 정도로 규율하는 것으로 2050년에 정말로 '탄소중립'이 달성이 되는 건지 정책이라는 것이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정부 측 그럼요. 김형두 헌법재판관 그런데 5년마다 그때그때 봐서 한다, 미리 안정한다고 했을 때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됩니까? 정부 측 기존에 독일이 위헌 판결을 받았던 이유는 독일연방 기후보호법 4조 제6항에서 '2025년 연방정부는 2030년 이후 감축해야 하는 배출량을 법규 명령을 통해 확정한다' 이 조항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탄소중립기본법은 굉장히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2030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률에서 35% 이상을 정하되,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행정계획의 전문성과 재량성을 여러 가지 기후변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특수성을 고려해서 법률에서 범위를 정해 행정청에 권한을 위임해 준 겁니다. 게다가 2030년 이후부터는 5년마다 계속 국가 기본계획을 점검하게 돼 있고요. (중략) 무엇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라는 국가비전이 명확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정도의 체계를 갖춘 법률이 어느 정도 선진국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고요. 이 정도 시스템을 갖췄다면, 문제는 시스템에 맞춰 이행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2031년 이후가 독일 경우와 같이 '공백 상태'라고 하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만 보더라도 명확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
"바닷속 미역 사라져 한숨 짓는 해녀…버팀목 되는 판결되길
이날은 3명의 청구인 본인도 나와 의견을 밝혔습니다. 12살의 한제아 학생도 2살 된 사촌 동생 아윤이와 아기 기후소송을 함께한 동생 61명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며, 담담하게 생각을 밝혔습니다.2024.05.21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두 번째 공개 변론 中 청구인 진술 |
청소년 기후소송 청구인 김서경 내가 약자라서,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기후위기가 평범한 모든 사람을 약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가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에게 기후 대응을 요구해 왔던 이유는 더 이상 이건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재난의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시민 기후소송 청구인 황인철 이상기온으로 사과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폭염에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 간 건설노동자, 바닷속 미역이 사라져 한숨 짓는 해녀, 장마가 지고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 이루는 반지하 방의 주민. 모두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희망과 버팀목이 되는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저는 이 소송이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회복할 수 없는 위험 '기후위기' 헌재 결론은?
이날 공개 변론은 장장 4시간 30분이 넘는 공방 끝에 마무리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탄소중립기본법에 정의된 기후위기의 정의를 살펴보죠.
탄소중립법 제 2조 中 '기후위기'의 정의 |
'기후위기'란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날씨뿐만 아니라 물 부족, 식량 부족, 해양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 인류 문명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여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때'라는 점은 청구인 측과 정부가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과연, 헌재의 판단은 어떻게 나올까요.
기후소송은 모든 변론이 마무리돼 이제 재판관들이 합의를 거쳐 결론을 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르면 올해 9월 이전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