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주목받는 제작사와 주목해야 할 감독이 만났다. 꿈이라는 소재로 인터넷 사회에서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 가진 그림자를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 '드림 시나리오'는 지금 시대 주목해야 할 영화다.
소심하고, 한심하고, 평범 그 자체여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감 없는 폴(니콜라스 케이비)로 인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그가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폴에게는 SNS 메시지 폭주, 인터뷰 출연, 광고 모델 요청은 물론 꿈속 만남이 현실로 이어지는 기막힌 일까지 벌어진다. 꿈속 남자에서 모두가 꿈꾸는 남자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그가 등장하는 모든 꿈이 악몽이 되며 그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다.
'해시태그 시그네'를 통해 인터넷 시대 '관종'이라는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그려내며 단숨에 주목해야 할 감독으로 떠오른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이 다시 한번 인터넷 시대를 꼬집었다.
'드림 시나리오'는 꿈과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언어 혹은 패러디물)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SNS 시대 캔슬컬처(SNS상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계정을 팔로우 취소하는 문화)와 셀럽 문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극단적인 예시를 통해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다. 또한 제목의 단어처럼 폴이 '꿈', 다른 말로는 욕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가져간다.
무의식의 세계인 꿈은 어떻게 현실과 연결되는가, 우리는 어떤 꿈을 내면에서 외면으로 끌어낼 것인가,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이 떠돈다. 방관자에서 행위자로 변한 폴, 그런 폴이 등장하는 악몽 같은 꿈은 폴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두운 욕망처럼 펼쳐진다. 누구나 내면과 무의식에는 여러 다양한 형태의 꿈이 존재하듯 말이다.
또 하나, 영화를 시대와 연결해 넓게 보면 밈, 캔슬 컬처, 셀럽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밈을 통해 개인은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되지만, 어느 순간 논란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환된다. 즉 지지자들이 공격적으로 돌아선 순간 해당 인물은 명성을 얻은 것 이상으로 인터넷은 물론 사회에서도 '캔슬'될 수 있다. 이 양면적인 속성은 타인의 꿈에 등장한 폴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진다.
영화의 주인공 폴은 마치 얼룩말 같은 인물이다. 무리에 섞여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는, 소심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폴이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리에서 빠져나온 얼룩말이 된다. 꿈을 통해서다.
무작위적으로 타인의 꿈에 등장하게 된 폴은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초반에는 사람들의 꿈속에서 폴은 철저한 '방관자'다. 폴을 봤다는 사람들의 꿈은 하나같이 끔찍한 사건·사고지만, 그 안에서 폴은 꿈의 주인들을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신기한 현상으로 치부하고, 폴은 셀럽이 되면서 그토록 열망했던 '명성'을 얻게 된다.
어느 꿈에서나 방관하는 폴의 모습은 영화에서도 이야기되듯이 '밈'과 같다. 화제성 높은 이슈는 즉각적으로 밈이 되어 SNS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소비된다. 밈이 되는 이슈는 긍정적인 이슈도 있지만, 부정적인 이슈도 존재한다.
지난해 11월 사기 혐의로 체포됐던 전청조의 독특한 말투가 밈이 됐던 것처럼 말이다. 전청조의 밈화는 재미로 소비됐지만,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과 이로 인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자 밈은 빠르게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폴은 이러한 밈의 속성과 변화를 그대로 따른다.
폴이 꿈에서 방관자가 아닌 소극적인 행위자로, 소극적인 행위자에서 적극적인 행위자로 변화했을 때부터 문제는 시작한다. 타인의 꿈속에서 폴은 꿈의 주인이 죽음의 위협에 놓여도 방관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적극적으로 꿈의 주인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억눌러왔던 성적 욕망까지 발현된다. 이때부터 꿈, 즉 폴의 '밈'은 사람들에게 유희가 아닌 트라우마가 된다.
폴이 방관자에서 행위자로 변하는 시점은 제법 명확하다. 폴이 쓰지도 않은 자신의 책을 출판하고자 하는 욕망과 성적 욕망, 영화가 사용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행위에 옮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명성은 그의 내면에 잠재돼 있던 여러 꿈을 일깨우고 실행하도록 만들었고, 잘못된 방향으로 실행한 꿈과 함께 그의 명성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꿈이 호기심에서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사람들은 폴을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현실과 무관하게 무의식 안에서 폴은 이미 '나'를 위협하는 인물이 됐기 때문이다. 화제의 인물에서 논란의 인물, 위협적인 인물로 바뀐 폴은 점차 무리에서 도태된다. 명성이 어떻게 사람을 한순간에 띄웠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지 처절하게 겪 폴은 다시금 무리에 속한 얼룩말이 되길 바란다.
이 문제적인 작품에서 스스로가 밈이 된 폴에 관객들이 보다 가깝게 다가가 이입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역할이 컸다. 배우로서 '명성'이 가진 양면적인 속성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하고 느낀 니콜라스 케이지이기에 그의 연기에는 보다 진한 진정성이 묻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를 소재로 한 '해시태그 시그네'를 통해 주목해야 할 감독으로 떠오른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이번에도 인터넷 사회가 만들어 낸 문제를 블랙 코미디를 입혀 흥미롭게 풍자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크리스토퍼 부글리 감독은 주목할 감독에서 앞으로가 더 주목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102분 상영, 5월 29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