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경쟁사회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미래를 품은 목소리⑩]
신영미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극도의 경쟁감에 시달린다. 사진은 24일 서울 시내 한 학원가 건물에 붙어있는 의대 입시 홍보물. 연합뉴스

초저출산 현상의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어 왔다. 높은 주거비용, 저성장시대 고용 불안, 시장 인력의 매스매치, 여전히 존재하는 돌봄 공백, 지나친 사교육비, 출산 후 여성에게 가중되는 육아 책임감,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어려운 직장 환경, 만혼과 비혼의 증가 등등.
 
초저출산에 가장 주요한 원인 한 가지란 없다. 모두 정답이다. 제시된 요인들이 전부 맞물려서 국내 초저출산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쉽게 지나치는 측면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지향점만을 추구하고, 물질적 성공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며,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서열화 된 대한민국의 비교하는 사회문화 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극도의 경쟁감에 시달리면서 행복하지 않았고, 지금도 SNS 등을 통해 스스로를 타인의 삶과 비교하면서 자책하고 또 달려가고 있다.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하나이면, 세상의 대다수가 불행해진다. 기준점에 도달한 상위권의 소수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상위권에 도달한 소수의 사람들도 행복하기는 어렵다. 그 안에서 서로 비교하고 불안해 하면서 그 기준점에서 제외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공의 기준점이 획일화된 경쟁사회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신영미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서로 비교하면서 자신의 기준에서 누군가 나보다 낮다/높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갖는 세상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어렵다. 내 자녀가 어떤 옷을 입는지, 내가 어떤 차를 타는지, 우리 가족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가 다 주변의 평가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부분이 자녀의 친구관계와 자아존중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야 진입 가능한 생애과정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청년층에게 나타나는,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준비되었을 때 자녀를 낳고 싶다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 이는 비교 사회에서 자란 청년들이 자녀 출산을 고려할 때, 최소한으로 자녀의 행복을 담보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경쟁사회였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 고도의 압축적인 근대화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높은 교육적 지원과 기대로 우수 인력이 많은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 내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다양해지고,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질적인 성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모든 직업은 다 가치가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불법이 아니라면, 사회에 어떠한 모양으로든 기여하기 때문이다. 삶의 다양한 방식들은 개인에게 의미 있는 선택의 결과이므로,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 받기보다 존중받아야 한다.

처음에 열거한 모든 초저출산의 원인들에 대한 대안들은 지속적으로 활발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심리적 경쟁감을 유발하는 국내 사회문화에 대한 변화도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모든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흥미를 지닌 분야는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녀의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자녀출산으로 인한 비용만 줄어든다고 출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회 제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문화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아동·청소년이 극도의 학업적 스트레스와 비교로 위축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옆 사람을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 서로 도우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다양해지는 사회, 옆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존중하는 다소 이상적인 사회문화를 지닌 대한민국을 꿈꾸어본다. 이러한 세상에서의 출산은 지금보다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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