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독교 주요 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구원파 계열에 소속된 인천의 한 교회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쓰러졌다가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진 여고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애초 교회 측은 사건 발생 직후 숨진 여고생이 해당 교회에서 3개월가량 숙식하며 지냈지만 누군지 몰랐고 학대도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학생은 이 교회의 교단이 운영하는 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에 공연 무대에도 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회 측 "숨진 여고생 이름도 몰랐다"…지난해 교단 합창단 무대 올라
23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숨진 A(18)양은 기쁜소식선교회가 대전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올해 초 이 교단이 운영하는 인천교회로 거주지를 옮겼다.교회 측은 숨진 A양의 어머니가 올해 1월 남편과 사별한 뒤 딸을 지인인 B(55·여)씨에게 맡겼으며, 이후 A양과 B씨가 이 교회 내 마련된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고 설명했다.
또 A양은 B씨 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이 교회 신도들과도 거의 접촉이 없었다고 전했다. 교회 관계자는 "A양이 평소 외출도 하지 않고, 교인들과도 접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이름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을 토대로 경찰은 B씨가 A양을 학대했다고 판단, 지난 18일 B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A양은 기쁜소식선교회가 운영하는 C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지난해 7월 올린 영상을 보면 A양은 C합창단이 주최한 클래식 공연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C합창단이 매년 여름철에 세계 정상급 클래식 음악 거장들과 협연해 전국을 순회하는 행사다. A양은 이 합창단의 수석지휘자가 지휘하는 무대에 섰다.
과거 C합창단을 지낸 한 관계자는 "수석지휘자가 지휘하는 무대는 합창단원만 설 수 있다"며 "특히 A양이 나온 무대는 단원 한 사람이라도 음정이 불안하면 공연을 망칠 수 있어 소수정예 단원들만 오른다"고 말했다.
전직 C합창단 관계자들은 성인들이 주축인 합창단에 당시 고교 2학년생이었던 A양이 무대 위에 오른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어려서부터 특출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A양은 중·고교 시절 여러 차례 경연대회에서 입상했다. A양이 다니던 학교 홈페이지가 공개한 수상 실적을 보면 A양은 고2였던 지난해 5월 국내 한 음악교육전문지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성악 전공 부분 3등상을 받았다. 중3이었던 2021년 12월에는 다른 음악교육전문지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교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합창단 숙소로 지목된 인천교회…"규율 엄격해, 종종 폭력도 목격"
기쁜소식선교회가 2000년 창단한 C합창단은 지휘자, 성악가, 연주자 등 100여명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직 C합창단원들은 A양이 숨진 교회가 합창단원들의 숙소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공연 연습 때 며칠 묵는 곳이 아닌 숙식을 해결하는 기숙사라는 것이다.C합창단은 교단의 전국 순회 성경 세미나 또는 자체 전국·해외 순회공연 등 연 200차례 이상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교단이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음악적으로 특출난 재능을 보인 A양이 올해부터 이 교회에서 지낸 건 A양 어머니의 요청이 아닌 합창단 단장의 섭외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직 합창단원들의 추측이다.
A양이 재학한 대안학교 역시 기숙학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한 D씨는 "해당 학교는 C합창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곳으로 합창단과의 협연을 가장 중요시했다"며 "학생들은 평소 학교 수업은 다 빼고 합창단 행사에 동원됐다가 시험 날에만 출석한 뒤 다시 합창단으로 보내는 등 합창단원을 키워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애초 이 학교도 개교 당시에는 합창단과 명칭이 같은 C학교로 개교했다가 2018년 학교명을 변경했다.
C합창단 단장은 기쁜소식선교회 설립자의 딸로, 그 역시 이 교회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직 합창단원들은 합창단장과 단원이 같은 건물에서 숙식하면서 공연 일정과 식사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이 교회에서 연습하며 보내기 때문에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고 회고했다. 그들은 모두 합창단 내 폭력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교회 측은 A양이 지난해부터 C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평소 이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CBS노컷뉴스의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교회 측 관계자는 "A양이 일부 행사에서 C합창단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이유로 합창단원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된다"며 "대안학교 학생일 뿐, 교회는 A양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공범 여부 파악 중…합창단원 등 신도 5명 참고인 소환 계획
경찰은 이 교회와 합창단 내부에서 A양에 대한 학대가 이뤄졌는지 파악하기 위해 최근 합창단원 등 신도 5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회 측은 "인천교회는 행사나 공연이 있을 때만 합창단이 잠시 머무는 곳이지 숙소가 아니다"라며 '개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경찰은 A양이 장기간 학대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구두소견을 토대로 "합창단원 등 신도들이 B씨가 A양을 학대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교회 측의 주장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양이 합창단원 숙소의 바로 옆 호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합창단원이 아니라고 주장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아무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여고생 '온몸에 멍과 결박 흔적'…경찰 혐의 변경 검토
앞서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지난 18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이 교회 신도인 B씨를 구속했다. B씨는 인천시 남동구 소재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에서 A양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지난 15일 오후 8시쯤 "A양이 밥을 먹던 중 의식을 잃었다"며 "최근에도 밥을 잘 못 먹었었고 (지금) 입에서 음식물이 나오고 있다"고 119에 신고했다.소방 당국의 공동 대응 요청을 받은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A양은 교회내 방 안에서 쓰러져 있었다. 그는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멍이 든 상태였으며, 두 손목에는 결박 흔적이 있었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한 A양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시간 뒤 숨졌다. 국과수 부검 결과 A양의 사인은 폐색전증으로 추정됐다. 외상이나 장시간 움직이지 못한 경우에 발병하는 질환이다.
교회 측은 A양이 정신이상증세 등으로 자해를 해 그를 보호하기 위해 결박했다고 해명했다. 또 A양은 숨지기 1주일 전부터 상태가 악화돼 음식물 등을 섭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양이 실제 정신이상증세로 병원 진료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교회 측은 올해 1월 남편과 사별한 A양의 어머니가 딸을 올해 3월부터 지인인 B씨에게 맡기면서 교회에서 A양과 B씨가 함께 지냈다고 주장했다. 또 A양이 평소 교회내에서 왕래가 거의 없어 신도들은 그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고 했다.
경찰은 단시간 범행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학대에 의해 A양이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한 B씨에게 법정형이 더 무거운 아동학대치사나 아동학대살해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