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 역시 권력의 정점인 최고지도자의 '통제'를 받는 등 일반적인 대통령제 국가와는 상황이 다르다.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인준·해임 권한은 물론 행정부 수반의 최대 권한인 군 통수권도 갖는다.
현재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85세로 고령이다. 그동안 그의 후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물이 라이시 대통령인데, 그가 지난 19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다.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4)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 모즈타바가 이란 정치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이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잠재적 최고지도자 후보로 거론돼 왔다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이란 정부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 하메네이는 그의 아버지 하메네이가 소유하던 경제 기반을 흡수한 뒤 이란 정부 내 보안 관계자 인사권까지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이란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 지도부 내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즈타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하메네이가 아들 모즈타바를 공개적인 후계자로 내세울 경우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이슬람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하메네이가 왕위를 물려주듯 세습하게 된다면, 팔레비 왕조의 통치를 불법적인 군주제라고 비난했던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루홀라 호메네이의 철학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메네이도 지난해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메네이의 잠재적인 후계자로 거론되는 또 다른 인물은 최고지도자 선출권을 가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소속 알리레자 아라피(67)다.
아라피는 명망 있는 종교 지도자로 하메네이가 알 무스타파 국제 대학의 총장으로 직접 발탁했다. 그는 이란의 종교 도시 쿰(Qom)에서 금요 대예배를 집전하며 이슬람 신학교의 지도자로서 시아파 신학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외신들은 향후 최고지도자 승계 구도를 짜는 과정은 이란에 닥친 안팎의 위기 속에 이뤄지는 만큼 더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경제난, 개인적 자유에 대한 통제, 사생활 억압 때문에 국민의 불만이 누적돼 있고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촉발된 전국적 반체제 시위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의 이란 연구원 엘리 게란마예는 "새 정부는 망가진 경제, 국민의 깊은 좌절 때문에 훨씬 더 망가진 사회계약을 물려받고 출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