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2023시즌 V-리그 포스트 시즌(PS)은 한국전력의 새 역사가 쓰여진 순간이었다. 정규 리그를 4위로 마친 한국전력은 단판 승부로 펼쳐진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3위 우리카드를 제치고 업셋으로 PO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전력의 창단 첫 PS 승리였다.
이어 2위 현대캐피탈과 3전 2선승제 PO에서는 1차전 패배 뒤 2차전 승리, 2014-2015시즌 첫 PO에 진출 후 8년 만에 PO에서 승리하며 팀의 새 역사를 썼다. 비록 3차전에서는 패하며 창단 첫 챔피언 결정전 진출은 무산됐지만, 한국전력이 봄 배구에서 보여준 저력은 인상적이었다.
당시 서재덕은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에게 '미친 남자'라 불릴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한국전력의 봄 배구 역사를 새로 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2023-2024시즌에는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18승18패 승점 53을 기록, 4위 현대캐피탈(18승18패·승점 55)에 2점 차로 뒤진 5위에 머물렀다. 2020-2021시즌 이후 3년 만의 PS 진출 실패다.
봄 배구 없이 시즌을 마친 데 대해서는 "2시즌 연속 봄 배구에 갔다가 못 가니까 많이 허전하긴 하더라. 일찍 시즌을 마치고 다른 팀 경기를 보니까 화도 났다"면서 "우리가 준비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시즌에는 더 잘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서재덕이 생각한 봄 배구 진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이번 시즌에는 뒷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배구에 대한 간절함은 있었지만, 팀원들 간의 호흡이 부족했다"면서 "지난 시즌에는 5세트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경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쉽게 지는 경기가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즌이기도 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베테랑임에도 풀 타임을 소화한 것. 서재덕이 36경기를 모두 소화한 것은 2016-2017시즌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서재덕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고, 부상도 없어서 다행히 풀 타임을 뛰었던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몸 관리가 잘 안 됐던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한지만, 후배들이 더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면서 "서로 경쟁하면서 팀이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권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서재덕이다. 한국전력은 이번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에서 공격수 대신 유일하게 세터를 지명했다. 하승우가 입대했고,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김광국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한국전력은 주전 세터가 필요해 일본 출신 야마토 나카노를 뽑았다.
이에 권 감독은 "세터를 뽑을지, (임)성진이와 (서)재덕이의 체력 부담을 덜어줄 공격수를 지명할지를 두고 고민했다"면서 "나도 세터 출신이다 보니까 세터가 안정돼야 팀이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쿠바 출신 공격수 루이스 엘리안 에스트라다를 지명했다. 권 감독은 "공격은 좋은 것 같고 수비나 리시브는 보완해야 할 것 같다"면서 "재덕이를 아웃사이드히터로, 루이스를 아포짓으로 기용할까 생각 중이다"라고 밝혔다.
기존 외국인 선수 타이스와 료헤이는 팀을 떠났다. 서재덕은 "많이 아쉽다. 료헤이는 베스트7에 선정됐는데 팀 사정상 세터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 아쉽다. 리시브 부분에서 안정감이 있어서 우리가 많이 편했다"면서 "타이스는 대표팀 차출 후 합류가 늦어져서 시즌 준비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새 선수가 왔을 때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줘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롭게 합류하는 엘리안이 아포짓을 맡고, 본인이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설 거란 권 감독의 계획에 대해서는 "엘리안과 함께 해보진 않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빨리 원 팀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안이 부족한 수비적인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서재덕은 "연차가 쌓이다 보니까 수비적인 부분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면서 "젊었을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 실수를 해도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새로운 세터와의 호흡에 대해서는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다. 어떤 스타일인지 모르니까 더 빨리 와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면서 "영상은 봤다. 확실히 잘하긴 하더라. 그래서 기대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2011-2012시즌 KEPCO(현 한국전력)에 입단해 한국전력에서만 뛴 서재덕은 어느덧 데뷔 12년 차를 맞는다. '원클럽맨'으로서 늘 우승에 대한 갈망이 컸을 터. 그는 "노력은 하는데 쉽지 않더라.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욕심은 계속 많은 것 같다. 한국전력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가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많은 변화 속 차기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기대감도 크다. 서재덕은 "젊은 선수들이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세터 (김)주영이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서 "다른 포지션에서도 젊은 선수들이 더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그대로 팀을 이끈다.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종료 후 권 감독과 재계약했다. 서재덕은 "감독님은 선수들을 전적으로 믿어주시는 분이다. 선수들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재덕은 권 감독의 선수 시절을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감독님은)원래 성격이 불같은 분이셨다. 그때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면서 "감독이 되시고 정말 유해지셨다"고 웃었다. 이어 "한 번쯤은 호통치실 만한 순간에도 참고 믿어주시는 걸 보면서 늘 감사함을 느낀다. 그만큼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서재덕은 "팀의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서 걱정은 되지만, 반대로 기대되는 부분도 많다"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