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관계', 조선과 한국의 관계를 줄인 말이다. 북미관계와 북중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 등의 표현처럼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6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중국 방문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남북에 대해 과거에 사용했던 '북남관계' 대신 '조한관계'라는 표현을 썼다.
조 장관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당부한 것에 대해 "한국이 아무리 흑백을 전도하며 잔머리를 굴리고 말재간을 피워 피해자 흉내를 낸다고 하여 이제 더는 그에 얼려 넘어갈 사람이 없으며 조한관계는 되돌려 세울 수 없게 되어있다"고 비난하는 대목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18년 2월 6일 '올림픽 이후 드리운 검은 그림자'라는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해외 언론보도에서 언급한 '조한관계'라는 말을 인용해 사용한 적은 있지만, 북한 당국이 직접 사용한 것은 이번 박 부상의 담화가 처음이다.
북한이 과거에 사용한 '북남관계'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민족내부의 특수 관계에 기초한 표현이라면, '조한관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 들어 남북에 대해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한 것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연말전원회의에 이어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해상 국경선을 포함한 영토조항 신설 등 2국가 관계를 반영한 헌법 개정을 주문한 바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동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2국가 관계를 반영하는 후속조치는 하나하나 실행 중이다.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철거, 애국가 가사 수정, 한반도 중 북한만을 담은 지도인 '행정구역도'의 제작 등이 대표적인 후속조치이다.
북한이 지난 4월부터 경기와 강원 북부 등 비무장지대 전역에서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국경선 관리의 맥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최근 발표한 각종 담화를 보면 '한국', '대한민국', '조한관계' 등의 언급과 함께 '국경'이라는 표현이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남쪽 국경 가까이에서 벌어지게 될 《핵 타격》 훈련", "5월에만도 대한민국은 우리와의 국경 부근에서" 등과 같은 표현이 그렇다.
북한은 영토조항 신설과정에서 러시아 등의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실무 연구단을 자료수집 차 해외에 파견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담화의 '국경' 언급은 민족 관계를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는 차원에서 등장한 것"이라며, "헌법의 영토조항 신설과 그 연속선상에서 '국경' 설정 관련 준비가 내부적으로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적대적 남북 2국가 관계에 대한 김정은의 구상과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2국가 체제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후속조치도 큰 저항 없이 실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대수령들의 '통일흔적'을 지워나가는 조치들에 과연 어떤 정당성이 있는가에 대한 선전 선동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 북한에서 전원회의만 열려도 회의 결정사항의 관철을 위한 전국 단위 군중대회가 열리고 주민 강습과 해설 교양 등 다양한 설득 기제가 작동했던 것과 대조된다.
정일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강력한 사회통제체제 속에서도 나름의 동의기제를 통해 이념에 대한 주민들의 동의를 창출했으나 이번 '2국가 주장'은 이전의 프로세스와 확연히 구분 된다"며, "통일 등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남한정부의 정책을 이유로 부정하는 것은 북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 지배층에서도 혼란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