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은 지난 2023-2024시즌 5위에 그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권영민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내며 재계약했다.
16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만난 권 감독은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좋게 봐주셔서 또 할 수 있게 됐다. 감사하고 책임감이 크다"면서 "기쁨보다는 다음 시즌에는 팀을 어떻게 꾸릴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팀에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선수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단은 지난달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권 감독과 재계약을 발표하며 "구단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 차기 시즌 저연차 선수 육성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영민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선수 시절까지 포함해 2017-2018시즌부터 7년째 한국전력과 동행 중인 권 감독은 누구보다 구단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는 "가족 같은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은 늘 운동할 때 밝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면서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즐겁게 해야 실력 발휘가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화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연차 선수 육성 의지에 대해서는 "첫 시즌을 마친 뒤 젊은 선수를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면서 "주전 선수들의 뒤를 받쳐줄 젊은 선수들이 없어서 체력적인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강요만 할 수는 없다.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이 대화하며 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감독은 지난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수석 코치에서 정식 사령탑으로 승격했다. 첫 시즌부터 정규 리그를 4위로 이끌며 준플레이오프(준PO)에 진출한 그는 3위 우리카드를 꺾고 업셋으로 PO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한국전력의 창단 첫 포스트 시즌 승리였다.
PO 진출 당시 권 감독은 "이제 초보 감독이 아니지 않나"라며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그때는 겁 없이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같지만,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여세를 몰아 현대캐피탈과 PO(3전2선승제)에서도 1차전 패배 뒤 2차전에서 승리, 2014-2015시즌 첫 PO에 진출 후 8년 만에 PO에서 승리하며 팀의 새 역사를 썼다. 비록 3차전에서는 패하며 창단 첫 챔피언 결정전 진출은 무산됐지만, 한국전력이 봄 배구에서 보여준 저력은 인상적이었다.
권 감독은 "첫 시즌에는 선수들이 열심히 했고, 나도 선수들을 믿으면서 했던 게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두 번째 시즌에 대해서는 "타이스가 대표팀 차출 탓에 늦게 합류하는 등 악재가 있었고, 선수들이 열심히 했지만 잘 안된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 감독은 기존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타이스는 굉장히 잘했다. 못해서 바꾸는 게 아니다. 료헤이도 한국에 와서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했다"면서도 "재계약할 생각도 있었지만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승우가 입대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터가 필요했고, 새로운 분위기에서 선수들이 더 잘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 외국인 선수도 새로 뽑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바꾸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에서는 과감하게 세터를 지명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시 마지막 순번이었던 7순위였음에도 권 감독은 "7순위가 나온 게 다행이다"라고 의아한 말을 남겼다. 그는 "1순위가 나왔다면 우리카드가 지명한 선수를 뽑았을 것이다. 또 안 뽑힌 선수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7순위가 나와서 공격수 대신 세터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야마토를 뽑았다"고 설명했다.
시즌 종료 후 하승우는 입대했고,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김광국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에 확실한 주전 세터가 필요했던 한국전력은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에서 일본 출신 야마토 나카노(25·179cm)를 선택했다. 권 감독은 "세터를 뽑을지, (임)성진이와 (서)재덕이의 체력 부담을 덜어줄 공격수를 지명할지를 두고 고민했다"면서 "나도 세터 출신이다 보니까 세터가 안정돼야 팀이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차기 시즌에는 야마토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 권 감독은 야마토에 대해 "키가 작은 게 단점이지만, 빠른 공을 구사하며 기량이 출중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훈련을 해봐야 알겠지만 (서)재덕이와 (임)성진이가 빠른 공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행인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새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한국전력은 신규 선수 최대어로 꼽힌 쿠바 출신 루이스 엘리안 에스트라다(24·201cm)를 3순위로 뽑았다. 권 감독은 엘리안에 대해 "처음에는 높은 순위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포짓을 찾고 있었는데 아웃사이드 히터라서 기대가 크지 않았다"면서도 "실제로 보니까 너무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경기를 뛰어봐야 알겠지만, 신체 조건과 성격 등이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엘리안이 수비면에서 부족하다고 판단해 아포짓을 맡기고, 서재덕을 아웃사이드 히터로 기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그는 "엘리안은 아포짓을 맡을 예정이지만 공격을 왼쪽에서 하는 방향으로 생각 중"이라면서 "서재덕은 공격보다 리시브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왼손잡이니까 오른쪽에서 공격을 전개하고, 엘리안이 왼쪽에서 공격을 이끄는 포메이션을 구상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 교체보다 더 큰 변화가 있다. 맏형 박철우가 정든 코트를 떠난다. 2005년 출범한 V-리그 원년 멤버인 그는 19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배구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차기 시즌에는 미들 블로커 신영석이 주장 완장을 이어받는다. 권 감독은 "(신)영석이가 주장을 맡으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을 것"이라면서 "영석이 성격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주장의 무게가 쉬운 게 아니지만, 영석이가 잘해줄 거라 믿고 있다"고 신뢰를 보냈다.
많은 변화 속 차기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전력이다. 권 감독은 "주전 세터가 바뀐 만큼 빨리 호흡을 맞춰야 한다. 엘리안이 오면서 생기는 포지션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면서 "선수들이 한 경기를 위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주장인 영석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 시즌에는 외국인 감독이 무려 5명으로 늘어난다. 국내 감독은 권 감독과 삼성화재 김상우 감독 둘뿐이다. 색다른 경쟁을 앞둔 권 감독은 "한국 배구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국내 감독이라도 배울 점이 보이면 내 걸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단 무조건 이겨야 되지만 긍정적인 것은 확실하다"고 기대했다.
끝으로 권 감독은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외쳤다. 그는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수원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