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후보를 뽑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추미애 당선인을 제치며 '이변(異變)'을 일으켰다. 당초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추 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결국 이 대표 측의 무리한 '명심(明心)' 교통정리가 중진급 의원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후문이 나온다.
다만 이번 깜짝 선거 결과로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당내 중론이다.
'명심'과 반대 결과…정성호·조정식 '정리과정'이 기폭제 된듯
16일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 후보 선출 민주당 당선자 총회에서 우 의원이 의장 후보로 발표되자 개표장에 일순 침묵이 흘렀다. 이후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지만 일부는 여전히 웅성웅성하는 모습이었다. 대다수 의원들 얼굴에는 예상치 못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대표도 굳은 표정이었다. 두 후보 간 표 차이는 한 자릿수로 알려졌다.우 의원 당선이 '이변'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이른바 '명심'(明心)과는 다른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표는 선거 국면에서 주변에 "국회의장은 순리대로 되는 게 맞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순리'란 최다선 중 가장 연장자가 의장을 맡는 통상의 관례를 의미한다. 때문에 선수와 나이를 고려할 때 명심은 추 당선인에게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투표 2~3일 전까지만 해도 추 당선인으로 표가 모이는 기류가 형성됐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이 같은 관측과는 달리 우 의원이 의장직을 거머쥐었다. 다수 의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초선 당선인 중에는 약 70%에 달하는 상당수가 명심에 따라 추 당선인을 뽑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최근 며칠 새 재선이나 중진급 이상인 의원들의 마음이 돌아서 우 의원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한다.
중진들이 마음을 돌린 가장 큰 배경으로는 명심의 무리한 '교통정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투표 일주일 전 후보 등록을 마친 친명계 중진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느닷없이 후보에서 사퇴하고, 조 의원이 추 당선인과 단일화한 일이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 측이 너무 거칠게 표심을 정리하면서 불만이 많았다"라며 "선거 초반이면 모를까 후보 등록까지 다 된 마당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까 반발 심리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중진인 우상호 의원도 지난 1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구도를 정리하는 일을 대표가 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를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결정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공개 지적한 바 있다.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도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의장 경선에 왜 당 대표가 개입하나. 정말 해선 안 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추다르크' 강성 성향 부담도…지지기반 '튼튼'한 우원식, '온건' 이미지
두 후보의 개인기 차이도 승패를 가른 요인으로 꼽힌다.
추 당선인은 상대적으로 메시지의 선명성에 비해 당내 지지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상당 기간 국회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당내 조직을 활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우 의원은 최근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며 교류를 이어왔다. 우 의원은 당내 다수 의원이 속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으로도 분류된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투표 이틀 전쯤부터 당내 조직을 중심으로 우 의원 측이 기민하게 움직였다"라며 "반면 추 당선인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에서 나타나듯 추 당선인의 강한 성향도 부담스럽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 의원도 '명심'을 주장해왔지만, 추 당선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으로 분류된다. 수도권 지역구의 한 의원은 "두 후보 모두 '개혁국회'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뽑지 말아야 할 이유는 공히 없었다"라며 "이 대표의 안정적인 대권가도를 고려하면 돌발 변수가 많은 추 당선인보다 우 의원 쪽으로 쏠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원 "사기당했다" 반발하지만…이재명 '그립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 듯
깜짝 선거 결과에 이 대표 측은 내심 당황한 모습이다. 당장 강성 당원들은 당원 게시판과 이 대표 팬카페에서 분노를 쏟아내며 선거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사기당했다", "우원식 뽑은 사람들 명단을 공개하라", "당원과 어긋나면 수박이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결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선자들이 판단한 것이니 결과가 당심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짧은 입장만 내놨다.
다만 이 같은 선거 결과가 이 대표의 당내 장악력 약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총선 직후인 데다,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추 당선인을 민 것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이 누수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중진 의원들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러울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선거 직후 우 의원을 접견하며 논란을 봉합하려는 모습이다. 그는 "국회에서도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민심과 민의의 운영을 하실 것이라 믿는다"고 축하 인사를 건넸고, 우 의원은 "명심 논란은 민주당 화합에 도움 되지 않는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맡은 소임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