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내 젊은 낙선인들로 구성된 첫목회가 15일 "국민이 바랐던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부응하지 못했고, 당은 무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했다"며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슬로건인 공정과 상식을 복원시켜야 하고,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상징적 조치로 당대표를 선출할 때 50%의 민심을 반영하고,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자고까지 촉구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들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당대회를 빠르게 치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당의 근본적인 혁신과 지도체제 변경까지 논의의 폭을 넓히기에는 시간도, 권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태원참사·호주대사 등 총선참패 원인 꼽은 첫목회…'당심 50%·민심 50%',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 촉구
첫목회 이재영 간사는 15일 오전 전날부터 14시간가량 이어진 밤샘토론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보수정치의 재건을 위해 용기있게 행동하겠다"며 "오늘을 우리가 알고 있던 공정이 돌아오고,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돌아오는 날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첫목회는 지난 2년간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민심과 멀어진 사건을 크게 5가지로 꼽았다. △이태원 참사에서 비쳐진 공감 부재의 정치 △연판장 사태로 비쳐진 분열의 정치 △강서 보궐선거로 비쳐진 아집의 정치 △입틀막으로 비쳐진 불통의 정치 △호주대사 임명으로 비쳐진 회피의 정치가 그것이다.
이들이 언급한 5가지 사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결정을 내렸다. '입틀막'은 대통령 경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였고, 해병대원 순직사건 관련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은 방위산업 협력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식이다. 하지만 첫목회는 이런 논리가 국민들에게는 회피와 불통으로 비춰졌고, 총선에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봤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도 일련의 사태에 침묵했다며 "우리의 비겁함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언급했다.
민심에 다가서기 위한 첫 조치로 현행 당심 100%인 당 대표 선출 규칙을 '당심 50%·민심 50%'으로 바꾸고, 당대표 1인에 권한을 몰아주는 대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최고위원으로 구성된 최고위에 힘을 실어 주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일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서도 같은 요구를 전달한 바 있다.
이 간사는 "선거에서 봤던 민심과 당심이 굉장히 괴리가 있는 부분을 상징적으로라도, 반성하는 모습에서라도 좁히겠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조만간 비대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보다는 '속도'에 무게 둔 황우여 비대위…첫목회 "계속 목소리 낼 것"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가 이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조계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첫목회의 토론과 관련해 "지금 드릴 말씀이 없다"며 "(전당대회 규칙 등은) 비대위에서 추후에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정과 상식을 복원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나중에 또 들어보겠다"고 짧게 답했다.
현재 '6말7초'에 열릴 것으로 보였던 차기 전당대회가 물리적 준비 시간을 이유로 '7말8초'로 밀리는 것을 두고서도 당내에서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당에 요구되는 혁신은 빠르게 정상적인 지도체제를 세워서 추진하면 되기에 비대위를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당대표 선출에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당내에서 호응을 얻고 있지만, 지도체제를 변경하는 논의까지 병행될 경우, 여론 수렴과 의견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게 되므로 전당대회 시점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황우여 비대위원장도 지난 7일 집단지도체제와 관련해 "꼭 논의하자고 하면 하겠는데, 집단지도체제가 되면 대부분이 최고위원들 간에 이견이 표출되며 (상황을) 수습하기가 어려워진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수도권의 한 낙선인은 "지금 비대위가 전당대회를 열기 위해 꾸려진 비대위인 만큼, 현실적으로 낙선인들의 요구가 다 수용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그럼에도 변하지 않으면 다음 지방선거와 대선도 참패한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고, 지도부도 소통 자체에는 부정적이지 않은 만큼 끊임없이 쇄신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목회 회원들을 포함한 국민의힘 원외 조직위원장들은 오는 18일 광주에서 워크숍을 열고,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선인들의 5.18 광주 묘지 참배에도 함께 할 계획이다. 낙선인들은 18일에도 황 비대위원장을 만나 혁신과 쇄신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