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친윤검사들이 무대 뒤로 사라지고 신진 친윤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무리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지만,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취임 2년 만의 드라마틱한 현상이다. '5.13 검찰 인사'는 검찰 역사에 남을 또하나의 서초동 흑역사로 전해질 것이다.
'5.13 인사' 배경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시간적으로 작년 12월말 또는 올 1월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공간적으로는 대통령실에서 돌연 민정수석실이 새로 만들어진 상황도 살펴봐야 하며, 내용적으로는 윤석열 검찰 사단에서 지난 5개월 간 무슨 논란이나 암투가 있었는지를 파악해 봐야 한다.
2024년 1월 20일경, 여당 친윤쪽에서 나온 '정보보고'라며 한 장의 '지라시'가 여의도와 서초동을 강타했다. 내용인즉슨 한동훈 라인이 검찰을 마치 자신들의 사유물인 것처럼 취급하면서 모든 권력을 독식하려는 모습에 '누군가'가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동훈, 이원석 라인은 신 모 검찰국장(당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권 모 기조실장(당시), 김모 00지검장, 김창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4차장 등 7명을 언급했다.
필자가 과문해서이겠지만 '한동훈 사단'이란 말을 이때 처음 들었다. 법조계 인사들에게 이 지라시의 의미를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통됐던 해석은 "한동훈 사단이 어디 있습니까? 어차피 다 윤 사단인데요. 그리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사단을 형성할 만한 성격이 못됩니다. 윤 대통령처럼 검사들을 아우르는 아우라가 없어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동훈 사단이 실체적으로 존재하는지, 않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심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1월 당시의 시간적 상황을 좀 더 더듬어 보자. 1월 20일경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간의 이른바, 윤-한 갈등이란 것이 극점에 도달했다. 윤-한 갈등 중 전혀 예상치 못한 뉴스가 나온다. 이노공 법무장관 권한대행(법무차관)의 사임 소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윤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공석으로 두고 이노공 권한대행체제로 4월 총선까지 검찰,법무조직을 유지한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었다. 그즈음 또 돌발적인 뉴스가 등장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정에 관한 단독보도였다.
윤-한 갈등 와중에 검찰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어떤 일들은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갖지 않고 권력의 통치 철학에 맞물려 연결되어 돌아간다. 박성재 장관 후보자 내정은 본인도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박 장관에 대한 인사 검증은 작년 10월부터 법무장관 후보자 가운데 맨 먼저 시작됐다. 감감무소속이어서 본인조차 장관 지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시절이다.
1월 상황을 종합해 보자. 12월 말 또는 1월 초에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김건희 여사의 소환 조사 방침을 용산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용산은 난리가 난 듯하다. 야당은 작년 12월 28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상태였으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때부터 윤 대통령과 윤 사단의 원조 친윤 검사들 사이에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짐작된다. 용산은 절대로 김 여사 소환을 허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맞섰고, 이 과정에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산고검장으로 '좌천'(검사장급이 고검장급이 되는데 좌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좌우간 '좌천성 승진'이란 관가 용어가 있는데 대한민국 검찰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다) 소식이 전해졌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반대해 무산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이 사태 여파로 이노공 장관 권한대행은 '나로서는 도저히 중재불가'라고 판단했는지 돌연 사퇴했다. 윤 대통령이 원래 생각했던 법무장관 권한대행 체제가 깨진 것이다.
박성재 법무 장관이 취임하면서 인사 얘기는 물밑에서 진화됐다.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 검찰은 김 여사를 소환조사하지 않고 장관도 후속 인사를 총선 뒤로 미룬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총선까지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봉합됐던 대통령…원조 尹사단 충돌 다시 재발한 까닭
4월 10일 총선은 정권심판 태풍 속에서 야당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검찰도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던 김건희여사 특검법이 올 가을 22대 국회에서 재연될 것이라는 사실은 투명하다. 어떡하든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버틸 때까지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발등의 불이 떨어졌고 검찰로서는 명품백과 주가조작 수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특검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검찰 조직의 운명에 관한 문제라 개별 검사, 개별 총장도 어찌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검찰에게는 역사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해야겠다.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발바닥에 땀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5월 2일 이원석 총장과 주례회동에서 "명품백 의혹에 대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원석 총장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까지 명품백 수사를 신속하게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에는 반부패부 검사 1명, 공정거래조사부 검사 1명, 범죄수익환수부 검사 1명 등 3명을 특별 파견시켰다.
용산 대통령실은 잠잠했을까. 틀림없이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서둘러 민정수석실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 김주현 전 법무부차관을 임명했다. 김주현 수석은 기획 검사출신으로 인사와 정무 감각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국정원 파견 전력도 있고, 이명박 정부때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특수부를 지휘한 경험도 있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수사 때 "그 사람은 검사가 아닙니다"라고 불신을 표시했지만, 김주현 수석만큼 검찰 인사와 대국회, 대 사정기관 업무 대처 능력을 가진 인물은 없다. 그의 능력을 얘기하는 것일뿐, 그 능력의 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민정수석실 신설 목적은 민심청취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말은 장신구에 불과하다. 김 수석 임명은 넓게는 사정기관 단속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나 좁게는 김건희 여사 수사 대응을 빼놓고 해석하는 것은 넌센스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그 현실을 정확하게 입증하고 있다.
이원석-송경호 라인이 명품백 신속 수사를 밝힌지 불과 10여일 만에 송경호 검사장은 부산고검장으로 날라갔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명품백 수사와 주가조작 사건을 맡고 있는 1차장과 4차장도 각각 승진시켜 법무연수원과 고검으로 날려보냈다. 더 무슨 정황과 설명이 필요한가.
용산의 인사 메시지, '여사님 소환은 없다'
용산이 던지는 검찰 인사 메시지는 간단하다. 절대로 여사님을 소환하지 말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5월 9일 기자회견에서 명료하게 가이드라인을 쳤다. "주가조작 의혹 특검은 지난 정부에서 2년 반 정도 검찰 특수부까지 동원해 치열하게 수사했는데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건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모두 점검했으므로 '5.13 검찰 인사'로 다시 돌아가자. 눈 뜨고도 '5.13 인사' 폭탄을 맞은 이원석 검찰총장 말을 적는다. 5월 14일 아침 출근길 멘트다.
5월 14일 아침 출근길 멘트 |
기자: 검찰 인사가 있었는데 총장님과 사전 조율하신게 맞습니까? 이원석 총장: 어제 단행된 이번 검사장 인사….(거의 12초간 머뭇거림)…제가 이 문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기자: 용산과 갈등설 어떻게 보십니까? 이원석: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자: 김여사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이원석: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 일체의 다른 고려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검사들을, 수사팀을 믿습니다.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입니다. 기자: 후속 인사를 언제쯤 하실 계획인지요? 이원석: 후속 인사는 제가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
잔뜩 풀이 죽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눈길 속에 새로운 친윤 사단의 핵심이 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떠오른다. 이창수 검사장은 윤 대통령과는 검찰총장 대변인으로 눈을 맞췄다. 원래는 윤 대통령이 선택한 대변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대변인 시절 윤 대통령의 맘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이 검사장은 엄밀히 말한다면 특수부가 아니고 기획검사 출신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시절, 돈봉투로 논란이 됐던 안태근 검찰국장 밑에서 일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청와대 행정관도 경험했다. 김주현 수석과도 연이 있을 법하다.
서초동에서 윤 대통령이 검찰 인사를 할 때 꼭 챙기는 검사장 자리가 4개라는 소문이 있었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본적은 없다. 당연히 제 1번은 서울중앙지검장이고, 그 다음이 수원지검장(대북송금 수사). 여의도를 담당하는 서울남부지검장, 그리고 마지막이 전주지검장이라 하는데, 전주지검장은 의외여서 법조계 인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 인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 수사"때문이라고 했다. 왜 신경을 쓰는지 짐작되는 바는 있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여기에 적지는 않는다.
이창수 지검장은 법무부 대변인을 마친 뒤 성남지청장으로 갔다. 성남 FC사건을 수사했다. 그리고 전주지검장이 되었다. 누군가 '5.13 인사' 의미를 묻길래 농반진반으로 "전주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것은 동란이후 처음보는 인사"라고 했다.
'5.13 인사'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을 화끈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새로운 친윤 검사에게 임무를 맡겼다. 그 임무가 대통령 뜻대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명분에서 너무나 힘을 잃고 있다. 역설적으로 검찰에게 너무나 커다란 짐을 지우고 있다. 지금 검찰 내부에서는 "아무리 여사님이라고 하지만 소환 한 번 못하면 검찰이 뭐가 되냐"는 부메랑이 일고 있다.
검찰은 범죄혐의 확인을 위해 무수한 사람들은 소환한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검찰 소환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야당의 전직 대표는 소환도 하기 전에 파리에서 귀국해 검찰 소환 통보를 받기까지 반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죄의 유무가 소환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범죄 혐의를 확인하려면 누구든지 소환 조사가 필요하다.
현직 야당 대표도 소환하는데 대통령의 부인이라고 소환 조사조차 하지 못한다면, 수사팀이 그 주장에 맞닥뜨다면 서울중앙지검장은 영원히 뭉개면서 갈 수 있을까. 이원석 총장은 "수사팀을, 우리 검사를 믿는다"고 말했다.
'5.13 검찰 인사'를 보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핵심 친윤검사들이 날렸던 멘트들이 거품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다.
"지방권력과 부동산개발업자의 불법 정경유착을 통해 본래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에 돌아가야 할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개발업자와 브로커들이 나눠가지도록 만든 지역 토착비리다."(이재명 영장기각 후, 이원석 검찰총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절차를 막아보려는 방탄탄핵이다."(검사 탄핵 소추안 발의 직후, 이원석 총장)
"수사받는 당사자가 마치 쇼핑하듯이 수사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민주국가 중에는 없다."(검찰이 민주당 민주연구원을 압수수색한 직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긴 듯 하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수원지검장 취임식에서 신봉수 신임 수원지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