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생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등을 이유로 3차 세계대전을 막을 시한이 앞으로 5~10년에 남지 않았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는 "전쟁 역사를 보면 과거에는 지리의 한계, 정확성의 한계 등으로 적군을 완파할 능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AI로 인해 그런 한계 자체가 없어졌다"며 "미·중 양국이 핵 군축처럼 AI 군사 능력에 대한 억지력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한다"고 주문하기도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오는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AI의 리스크 및 안전과 관련한 첫 번째 양국 정부당국자간 협의를 진행한다.
이번 협의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 이은 것으로, 당시 두 정상은 "첨단 AI 시스템의 리스크를 해결하고 AI 안전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미중간 AI 협의 개최를 위해 지난 1월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후속 협의를 진행했고, 지난달 26일에는 방중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 관련 논의를 이어간 바 있다.
이는 양국이 이번 AI 협의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첫 만남인만큼 양국은 이번 협의에서 자율무기체계, 사이버보안, 딥페이크 등 AI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안보 위험과 규제 방안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패권 경쟁과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더 나아가 군축 협상 같은 성과 도출보다는 AI 리스크에 대한 양측 의견과 관심 분야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협의에서 중국의 AI 군사적 활용 등에 대한 우려는 재차 전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은 "중국은 AI 발전을 중요한 국가적 우선 순위로 삼고 민간과 군사, 국가안보 분야에서 급격히 AI 역량을 배분하고 있다"면서 "이는 대체로 미국과 동맹들의 국가안보를 약화시켜 왔다"고 지적해왔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AI의 군사적 이용 측면에서 자칫 미국이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상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군부 대표회의에 참석해 '신흥영역 전략능력'을 높일 것을 주문하면서 AI전, 사이버전, 우주전, 무인전, 해양정찰 능력 강화를 촉구하는 등 중국이 국가적으로 AI의 군사 응용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로이터통신은 지난 8일 "미국 상무부가 '클로즈드 소스'(closed source) AI 모델의 수출을 제한하는 새로운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했다.
중국이 챗GPT같은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더 높게 세우는 방안을 미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규제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AI 반도체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행중인 기존의 수출 규제 그물망을 보다 촘촘히 짜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최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에 대해서도 중국으로 수출을 금지하는 기준을 추가한 바 있다.
이같은 미국측 방침에 대해 중국은 AI용 반도체를 포함해 미국의 대(對)중 반도체 규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AI 기술 발전의 혜택이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전파되도록 국가 간 AI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양국이 새롭게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있는 AI 부문에서의 기술 수준은 미국이 핵심 부문을 중심으로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AI 소프트웨어는 물론 반도체 등 하드웨어까지 모든 부문에서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중국도 정부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빠르게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 나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지난 3월 발간한 '우리나라 및 주요국 AI 기술 수준의 최근 변화 추이'에 따르면, AI 분야의 전반적 기술 수준은 2022년 기준 미국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중국은 92.5였다. 그 뒤를 유럽(92.4), 한국(88.9), 일본(86.2%)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