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13일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와 관련, "정부는 피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낙찰받아 매입임대주택으로 확보해 피해자들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선(先)주거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세종정부청사 내 국토부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단과 차담회를 갖고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두고, 야당이 집행도 어려운 (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시키면 오히려 피해 구제에 혼선이 발생해 피해자가 더 고통받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권이 '선(先)구제 후(後)회수'를 골자로 추진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오는 28일 본회의에 부의하는 안건이 지난 2일 재석 268명 중 찬성 176표, 반대 90표, 무효 2표로 가결돼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명확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이다.
개정안은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액을 우선 변제해준 뒤 정부가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6월 1일 제정·시행된 기존 특별법을 보완, 구제 대상에 외국인을 포함하고 임차보증금 한도 역시 3억 원 이하에서 5억 원 이하로 상향하는 등 전세사기피해자로 결정받을 수 있는 대상 범위를 넓혔다.
박 장관은 이 같은 개정안 반대 이유로 우선 "국토부가 의뢰한 감정평가사가 피해액을 산정하게 되는데 예컨대 1억 원짜리 전세를 5천만 원으로 평가하면 피해자가 수긍이 되겠느냐"며 "예기치 못한 분쟁만 더 생길 거란 걱정을 한다"고 지적했다.
또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하면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청약통장 저축액을 사용하는 건데 잘못하면 1조 원 이상 손실이 날 수 있어 기금을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청약통장에 돈 넣은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고 토론해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신 피해 주택의 경매 절차를 원활하고 신속하게 지원해 이 과정에서 피해액이 투명하게 산정되면 그에 따라 어떤 재원을 활용해, 얼마만큼 보상을 해줄 건지 좀 더 시간을 갖고 정해 나가자는 취지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확정 인정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약 1만 6천 명에 달하지만, 피해주택 경매가 진행되거나 완료된 사례는 300여 건에 불과하다.
다만 특별법 개정이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국토부의 의견은 '속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끈다는 지적도 있다. 구제대책이 지연되는 사이 지난 1일 대구 남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벌써 8번째 희생자가 나온 상황이다.
그러나 박 장관은 "피해당하신 분들은 그 집에서 살려고 준 돈이니 돈을 못 받게 됐어도 제일 중요한 건 그 집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고, 그게 보장된다면 돈을 돌려받는 건 좀 천천히 하자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최근 높은 금리여건과 맞물려 피해자 전용 저리대출 요건도 꼼꼼히 살피고, 전세사기는 예방이 가장 중요한 만큼 임차인이 자기방어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임대인 정보 제공도 대폭 확대하는 방안 등 다각도로 준비 중"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의회 다수인 야권 단독으로 통과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장관은 "28일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주무장관으로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다"면서 "거부권 행사 건의를 하겠다 혹은 안 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로선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는 당초 이날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강화방안 발표를 예정했지만,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 미비를 이유로 전날 밤 전격 취소했다. 야권이 추진하는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2주 앞두고 정부안을 제시하려던 건데, 불완전한 대안을 섣불리 내놓지 말자는 여당 원내지도부의 만류가 취소 배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장관은 "급하게 뭔가를 내놓으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국민적 합의를 거치자는 (여당 측) 의견이 있어 협조하는 차원에서(발표를 보류했다)"라고 발표 취소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미룬 발표를 언제 다시 할지 명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당분간 내놓지 않고 국회 상황과 추이를 봐서 액션(행동)을 취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여당이 일단 28일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야권과 협상하고, 관철되지 못할 경우 거부권 요청 검토 등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