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로도 사랑 받았지만 '눈물의 여왕'도 엄청난 사랑이었어요. 인지도가 늘어난 느낌이에요. 박지은 작가님이 워낙 필력이 좋으신 분이고 흥행 보증수표이긴 하지만 tvN 역대 흥행 1위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회차가 거듭될수록 잘될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들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는데 14회가 tvN 최고 시청률에서 0.1% 모자른 21.6%였거든요. 마지막회는 여기서 무조건 더 올라가니까 그 때 tvN 내부에서는 확신을 하셨던 거 같아요. 사실 너무 보람차고 기쁜 일이죠."
빌런이긴 하지만 윤은성은 홍해인(김지원)에 대한 집착 어린 애정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인생의 목표 자체가 홍해인으로 설정된 인물이라, 설득력을 갖춰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작 전재준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 비슷한 느낌의 반복이 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박성훈은 현명하게 이를 헤쳐나갔다.
"처음에는 전재준과 기시감이 들까봐 스타일링과 대사를 치는 발음, 화내는 감정 표출 등에 있어 차별화하려고 했고요. 제 눈에는 다른 캐릭터로 보였어요. 은성이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가정환경에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자라지 못했고, 해인이만 일생 보고 살았으니 결핍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인생의 목표 홍해인을 위해 '퀸즈 그룹'을 차지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어머니의 가스라이팅도 당했고…. 현우와 해인의 행복을 위해 은성이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감옥에서 나오면 또 해인이한테 집착하려고 했을 거라서요."
"재준이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죠. 그래도 그냥 재미있게 느껴졌지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어요. 제 이름이 너무 흔해서 각인되기 어려우니까 예명을 써볼까 하는 시기도 있었거든요. 박성훈을 네이버에 치면 65명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제일 유명한 박성훈이 되기로 했어요."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와 '눈물의 여왕' 박지은 작가. K-드라마의 양대 산맥과도 같은 두 작가와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떨까. 박성훈은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도 '대본의 충실함'을 두 작가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엄마냐, 아빠냐. 짜장이냐, 짬뽕이냐와 같은 질문이네요. (웃음) 김은숙이 낳았고, 박지은이 키웠다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어떨까요. 두 분을 감히 비교할 수가 없어요. 공통점은 중간에 어떤 피드백이든지 유연하게 해주시는데 최대한 대본대로 찍는 방향성인 것 같아요."
대립각을 세웠던 백현우 역의 배우 김수현, '퀸즈 그룹'을 삼키려는 최종 빌런 모슬희 역의 배우 이미숙과는 극 중 팽팽한 분위기와 다르게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김수현과는 MBTI가 똑같아 성격이 잘 맞았고, 이미숙에게는 감사함을 느꼈다는 전언이다.
"김수현씨와는 유쾌하게 찍었어요. 저와 MBTI가 똑같아서 성향과 성격이 잘 맞더라고요. '왜 이렇게 연기를 하지?' 싶은 경우도 있는데 수현씨와는 준비한 연기대로 하면 이질감 없이 순조롭게 촬영이 이뤄졌어요. 이미숙 선배님은 스스로에겐 혹독하지만 타인에겐 관대하세요. 사소하게는 병원 소개까지 정말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개인적으로 감사드려요."
"제 안에 있는 조그만 부분을 확장시켜서 표현하는 편이에요. 화를 정말 안 내는데, 사회생활 하다 보면 화가 날 때의 감정을 응축 시켰다가 에네르기파처럼 쏜다고 해야 될까요. 악역의 매력은 그런 부분을 대리만족 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 또 바쁠 때는 주변에서 알아보셔도 다가오시지 않는 점? (웃음) 거짓말로 가스라이팅 하고 이런 건 주변에서도 봐왔고,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연기하기 힘들기도 했어요."
'더 글로리' 이후 박성훈은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연기 욕구를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쉴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계속 일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쉬는 걸 불안해하는 스타일이에요. 취미 생활이 없어서 어떻게 쉴 지 잘 몰라요.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되는데 물론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즐거운 성취감이 있어서 그 과정에서 풀리는 게 많아요. 그래서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싶었던 거 같고요. 촬영 없는 날은 무조건 운동 가려고 하고, 사우나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제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유튜브로 '불멍' 하면서 쉬고 있어요."
이름을 알리고 나서는 박성훈 집안을 두고 재벌·금수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어려워지면서 박성훈에겐 연기가 더욱 절박하고 간절해졌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한 때는 그가 반에서 연기를 가장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자격지심과 가난이 제 가장 큰 동력 같아요. 저희 반에서 제가 제일 못하는 학생이라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었어요. 무대에 서면 덜덜 떠는 제 모습이 싫어서 스스로를 많이 몰아 세웠고요.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첫 등장에서는 (제가 연기를 못하니까)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점점 집중하더니 제가 마지막 대사를 딱하고 커튼콜을 받는데 다들 놀라서 박수를 못 쳤어요. '쟤가 어떻게 저렇게 해냈지?'란 생각이었죠. 그 순간이 잊어지지 않아요. 대학로에서 쉬지 않고 연극을 했던 것도 생활비가 없었으니까 그랬던 게 컸어요. 매체로 넘어오게 된 것도 이 정도 수익으로는 부모님을 부양할 수 없을 거 같은 현실적 이유가 있었고요."
"'오징어 게임'도 다 찰떡 캐스팅이고 누구 하나 자기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는 배우가 없어요. 200% 기대하셔도 좋을만큼 굉장히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저희가 보지 못한 모습일 거고, 진심으로 전작 스코어를 넘어설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열대야'는 마약 판매상 역할인데 실제로 마약을 하면 식욕이 없어진다고 해서 10㎏ 이상 그냥 운동 없이 감량하고 있어요."
이렇게 바쁜 행보를 지나서는 연극 무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2·'눈물의 여왕'과 같은 흥행작 출연 배우로서는 보기 드문 행보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이후 할리우드 진출 제의가 있지도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신중한 답을 내놨다.
"영어 능력이 일단 안되고, K-컬처를 만드는 창작자의 일원으로서 K-콘텐츠를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웃음) '오징어 게임'이랑 '눈물의 여왕'을 겹쳐서 찍은 시기가 있는데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직업 만족도나 정신적 포만감은 컸어요. 다음 행보를 신중하게 하느라 결정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그럼 초심을 찾을 겸 연극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마침 딱 맞게 준비된 공연이 있어서 참여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제일 유명한 '박성훈'이 되겠다는 포부는 아직 유효할까. 40대에 진입한 박성훈은 전혀 초조하지 않다.
"조정석 형이 매체에 넘어와서 한 동안 '납득이'로 통했던 것처럼, 저도 열심히 한 작품씩 하다 보면 제 이름을 찾지 않을까요. 재준이를 지우고 박성훈이란 이름을 한 번 높여 볼게요. (웃음) 저는 제가 나이 들어가는 게 좋더라고요. 20대~30대는 스스로 애송이 같았는데 그런 풋내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즐거워요. 또 사주를 보니 40대에 굉장히 잘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