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호러 영화 제작사 라디오 사일런스 프로덕션이 자신 있게 선보인 '애비게일'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붉은 추장의 몸값'에 뱀파이어 호러를 덧씌운 후 '백조의 호수'의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그렇게 '애비게일'은 뱀파이어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비틀고 뒤집으며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흑조 같은 뱀파이어를 탄생시켰다.
오직 돈을 위해서 업계 최고들로만 모인 납치범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부의 딸이자 평범한 소녀 애비게일(알리샤 위어)을 납치하고, 24시간 동안 저택에서 그를 감시하고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한다. 하지만 평범한 소녀 애비게일은 발레리나 뱀파이어였고, 오히려 납치범들은 역으로 저택에 갇혀 소녀의 장난감과 먹이가 된다. 납치범들은 이제 24시간 안에 살기 위해 저택에서 탈출해야 한다.
'애비게일'은 '스크림 6' '스크림' '레디 오어 낫' 등을 통해 떠오르는 호러 영화 제작사로 이름을 알린 라디오 사일런스 프로덕션과 '레디 오어 낫'을 연출한 라디오 사일런스의 대표 듀오인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오히려 '애비게일'은 단편 소설의 대가 오 헨리의 소설 '붉은 추장의 몸값'을 '백조의 호수' 버전의 뱀파이어로 풀어낸 작품에 가깝다. 납치범들이 어린아이를 납치하지만, 오히려 그 어린아이에게 당한다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 그리고 아버지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오 헨리의 소설과 닮았다.
'애비게일'은 '붉은 추장의 몸값'의 설정에 주인공을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채로 수백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로 설정했다. 장르 역시 뱀파이어 호러로,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은 샘 레이미나 피터 잭슨 감독 식의 스플랫스틱(스플래터+슬랩스틱)에 가깝다.
'애비게일'은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로 승부하는 영화라기보다 가벼우면서도 뱀파이어의 전통성을 비틀고 뒤집는 시도, 그리고 여기에 코믹한 코드가 가미된 피와 살과 내장이 난무하는 잔혹성으로 승부를 본다. 특히 신체가 산산조각의 수준을 넘어서 분쇄기에 갈린 것처럼 폭발하듯이 터져나가는 장면은 '애비게일'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다.
즉, 반전을 통한 재미가 아니라 대놓고 알려준 후 어떻게 기존 뱀파이어 장르와 다른 변주로 재미를 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겁에 질린 소녀처럼 보였던 뱀파이어 애비게일에게는 마늘도 십자가도 말뚝도 소용없다. 감독은 오히려 마늘의 향을 맡고, 십자가로 납치범을 찌르는 애비게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뱀파이어의 전통적인 코드를 뒤집고 비트는 시도를 한다.
발레 시퀀스로 시작한 영화답게 뱀파이어 애비게일은 음악에 맞춰 발레 동작을 액션으로 치환해 납치범들을 상대한다. 발레 동작뿐 아니라 현대 무용식의 동작을 차용한 액션 역시 등장한다.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흑조가 등장했는데, 발레 액션을 펼치는 애비게일의 모습은 새롭게 다가온다.
'애비게일'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지점은 조이(멜리사 바레라)와 애비게일의 감정적인 연대다. 애비게일은 조이의 아들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딸임을 이야기한다. 거짓을 말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드러낸 애비게일의 진실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관계를 고민하는 둘 사이를 잇는다. 이러한 결속은 영화 후반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파묘'의 화림 못지않게 한 손으로 얼굴에 피를 바르는 강렬한 모습은 물론 연약하고 겁에 질린 소녀, 쥐를 갖고 놀듯 납치범들을 갖고 놀다 찢고 물어뜯는 잔혹한 뱀파이어의 모습을 뛰어나게 표현했다.
알리샤 위어가 '백조의 호수'의 푸에테를 보여줄 때, 이미 그가 애비게일을 완벽하게 소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던 것임을 영화 내내 느낄 수 있다. 그런 알리샤 위어의 다음 행보, 그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레디 오어 낫'을 통해 호러 영화의 전형성을 비틀고자 했던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은 '애비게일'을 통해서도 뱀파이어 호러의 전형성을 비틀고 뒤집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자 했다. 새로운 호러 명가를 꿈꾸는 라디오 사일런스 프로덕션과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이 과연 다음 협업에서는 어떤 전형성을 비틀어낼지 주목해 볼 만하다.
109분 상영, 5월 15일 롯네시네마 단독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