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일을 중심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통화정책 수준에서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은 9일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촉발된 통화정책 대응 여부를 다뤘다.
보고서를 작성한 KDI 이승희 연구위원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있었던 기온과 강수량 등의 날씨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구조적 벡터자기회귀모형(Structural Vector Autoregression)을 이용해 실증분석한 결과, 기온과 강수량 충격은 1~2개월 정도 소비자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분석 결과 소비자물가는 기온이 과거 추세 대비 10℃ 상승·하락할 때 단기적으로 0.04%p 상승하고, 강수량이 과거 추세 대비 100mm 증가·감소할 때 0.07%p 증가했다.
다만 소비자물가지수는 날씨 충격이 1개월 발생한 경우 그 영향이 정점에 도달하는 2개월 후까지는 상승하지만, 3개월부터는 효과가 미미해 날씨 충격으로부터 단기적으로만 영향받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물가를 세분화하여 분석해보면 날씨 충격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은 신선식품가격 상승에 주로 기인할 뿐, 근원물가의 반응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계절과 과거 추세 대비 변화 수준을 감안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날씨 충격의 물가에 대한 영향은 강수량을 중심으로 여름에 더 강하게 나타났지만, 이번에도 근원물가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여름철 강수량이 과거 추세 대비 100mm 증가하는 경우 단기적으로 0.09%p 상승하고, 100mm 감소하는 경우 0.08%p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여름철 외 다른 계절의 날씨 충격은 물가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여름철에도 이례적 고온·저온 충격에도 물가에 유의미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날씨 충격으로 급변할 여지가 있는 신선식품 등 식료품가격의 단기간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의 변동이 물가의 중기적 흐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됐다.
비록 식료품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물가가 급변하더라도,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간의 괴리는 2년 안에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상 여건 변화에 따른 신선식품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단기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며 "중기적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통화정책이 작황 부진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에 대응할 필요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정 품목이 급등했을 때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다면 나머지 품목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통화당국이 통화정책을 통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면서도 "최근 근원물가가 안정적으로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사과 값은 아직도 굉장히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근원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물가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는 "국지적 날씨 충격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 확대와 같이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의 구조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품종 개량 등을 통해 기후적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날씨 충격이 1개월만 발생했다는 전제 아래 계산된 것으로, 날씨 충격이 2~3개월 연속 발생할 경우에는 그 영향이 누적되어 더 확대될 수 있다.
이 연구위원도 "지구온난화로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고 이로 인한 집중호우, 가뭄 등 기상 여건이 빈번하게 변화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강도도 확대될 수 있다"며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단기적인 물가 불안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