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韓 테니스 80년 초유의 사태? "관리 단체 지정, 체육회 이사회 상정"

대한테니스협회가 1945년 창설 이후 초유의 관리 단체 전락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협회 사무실 앞 간판. 테니스코리아

테니스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종목을 총괄하는 협회가 사상 초유의 관리 단체 전락 위기에 몰렸다.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가 이사회에 관련 안건을 정식으로 올리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8일 CBS노컷뉴스에 "전날 체육회 대회의실에서 대한테니스협회의 관리 단체 심의위원회를 열었다"면서 "관리 단체 지정 사유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심의위원회를 통과한 만큼 체육회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7일 심의위에는 테니스협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손영자 협회장 직무 대행은 8일 "위원장 이하 심의위원들에게 현재 협회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관리 단체 지정에 확고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체육회 심의위는 협회가 관리 단체로 지정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협회가 육군사관학교 테니스 코트 운영 문제로 중견 기업인 미디어윌에 40억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다. 체육회 정관 제12조 1항 가맹 단체의 관리 단체 지정 요건 중 '재정 악화 등 기타 사유로 정상적인 사업 수행 불가'를 적용한 것이다.

관리 단체로 지정되면 협회 임원진은 해임되고 체육회가 구성하는 관리위원회가 운영을 맡는다. 지난 1945년 창설돼 내년 80주년을 맞는 협회가 초유의 관리 단체 지정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는 셈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는 육사 코트를 둘러싼 테니스계의 분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6~28대까지 협회장이 모두 갈리는 과정에서 생긴 거액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테니스의 황금기'임에도 협회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협회 26대 주원홍 회장은 친동생인 주원석 회장의 종합 미디어 그룹인 미디어윌에 30억 원을 빌려 2015년 육사 코트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 대신 미디어윌에는 코트 운영권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27대 곽용운 회장이 그린벨트 지역에 들어선 실내 코트의 불법성 등을 이유로 미디어윌과 계약을 파기했다.

이에 미디어윌이 제기한 소송에서 협회가 1, 2심에서 패소하면서 원금 30억 원에 이자까지 60억 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게 됐다. 28대 정희균 회장은 미디어윌과 부채 협상을 위한 협약을 했지만 육사 코트 운영권 이관을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에 배임 의혹까지 일면서 지난해 9월 정 회장이 사퇴하고 대행 체제로 협회가 운영돼왔다.

2015년 당시 협회가 미디어윌로부터 30억 원을 빌려 리모델링한 육사 코트 전경. 이후 그린벨트 훼손에 대한 조처로 실내 코트 지붕 등은 철거가 된 상황이다. 협회

그럼에도 현 집행부는 협회의 관리 단체 지정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손 대행은 "정희균 회장이 사퇴한 시점에서 관리 단체 지정이 됐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후 7~8개월이 흐른 상황에서 체육회가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협회가 힘든 가운데서도 공식 용품 계약을 해서 대표팀을 지원하는 등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재정 악화 등 기타 사유로 정상적인 사업 수행 불가'라는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손 대행은 "7~8개월 동안 8억 원 상당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등 미디어윌의 부채를 빼면 협회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디어윌도 최근 협회에 대한 압류를 풀어주면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 협회는 미디어윌 사태로 지난 2022년 9월 메인 스폰서로 계약한 하나증권으로부터 지난해 후원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압류가 풀리면서 지난해 미지급된 후원액이 조만간 입금될 예정이다. 대행 체제 이후 협회 운영비를 넘는 수준의 거액으로 알려졌다.

테니스계 일각에서는 체육회의 움직임이 정치적인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당초 협회는 정 회장 사퇴 후 지난해 10월 회장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고, 주원홍 회장과 곽용운 회장은 물론 예종석 부회장 등 3명이 입후보까지 마쳤다. 그러나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출마 후보의 자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선거 중단을 선언했다.

특히 이 회장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스포츠윤리센터가 과거 3명의 테니스협회장을 조사하고 있는데 이게 완결돼 모든 게 소명될 때까지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윤리센터는 정희균 회장 개인 비위 사안에 대한 조사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체육회가 선거 불가의 이유로 꼽은 주 회장, 곽 회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도 '실익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윤창원 기자

그럼에도 체육회가 협회의 선거 중단에 이어 관리 단체 지정까지 추진하는 것은 배경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한 테니스계 관계자는 "이기흥 회장이 3연임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은 체육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면서 "협회 전 회장들이 여야 정치권에 연계돼 알력 다툼이 있는 만큼 의혹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리 단체가 되면 체육회, 특히 이 회장의 입김이 통하는 인물이 협회 운영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협회 초유의 위기에 테니스계도 체육회의 절차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도테니스협회 사무국장 협의회는 지난 6일 '대한테니스협회 관리 단체 지정 결사 반대의 건'이라는 공문을 체육회에 보냈다. 협회장 선거를 올해 상반기에 시행해달라는 요구 사항도 전했다.

또 남녀 국가대표 출신들도 9일 올림픽공원에 모여 협회의 관리 단체 지정을 반대하는 호소문을 발표한다. US 오픈 16강 2회의 이형택 오리온 감독, 서울아시안게임 4관왕 유진선 전 의정부시청 감독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테니스협회장 선거에 나온 후보들. 협회


손 대행은 "사실 테니스계가 갈라져 있었는데 늦은 감은 있다"면서도 "3명 회장 후보를 모두 만났는데 이번만큼은 한목소리로 관리 단체 지정을 반대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당선이 되면 미디어윌과 부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자신했는데 설득력이 있는 방안이었다"면서 "체육회가 관리 단체로 지정한다면 새 회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테니스는 남자 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세계 16강에 오르고, 여자프로테니스(WTA) 코리아오픈이 500 시리즈로 격상되는 등 부흥을 맞고 있다. 또 동호인 대회는 신청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되는 등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테니스협회가 관리 단체로 전락한다면 한국 스포츠의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체육회의 차기 이사회 시점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 과연 한국 테니스가 벼랑 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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