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한 게임 제작자와 2차 가해 게임을 제작한 제작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5·18과 관련한 왜곡·폄훼가 새로운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광주시의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전담 인력조차 배정하지 못하는 등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8일 광주경찰청에 로블록스 '그날의 광주' 게임 제작자와 '그날의 광주' 게임 제작자를 언론에 제보한 초등학교 6학년 이호진 군을 2차 가해한 게임 제작자에 대해 5·18민주화 등에 관한 특별법과 위반·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게임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는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으로, '그날의 광주'는 올해만 누적 이용자 수가 1만 5천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로블록스 '그날의 광주' 게임은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를 배경으로 이용자가 정부 혹은 시민군을 선택해 진행하는 게임이다. 군인과 경찰이 된 이용자들은 '시민 폭동이 일어났으니 막으라'는 공지에 따라 죽도와 곤봉, 총을 이용해 시민들을 살상할 수 있다.
특히 게임 머니를 구입하면 북한군을 선택할 수 있어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사실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 문제점이 있어 이번 고발 조치가 이뤄졌다.
5·18 왜곡·폄훼 방식 다양해지고 있지만 대응에 '한계'
이처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게임 제작 등 새로운 방식의 왜곡·폄훼가 최근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왜곡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8일 기준으로 재판 6건이 진행 중이며 5건에 대한 고발 조치가 이뤄졌다.
특히 5·18 북한군 개입과 관련해 왜곡 도서를 출판한 지만원을 상대로 3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며, 최근 지만원이 추가로 출판한 5·18 왜곡 도서에 대해 지난 2월 추가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왜곡과 폄훼 총 11건 중 왜곡 도서 출판 및 배포는 6건, 강의 및 공식 발언은 2건, 보도 1건, 게임 제작은 2건으로 점차 5·18 왜곡·폄훼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5·18 왜곡·폄훼 방식이 확장돼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5·18기념재단과 광주시는 5·18 왜곡·폄훼에 대한 선제적 대응의 일환으로 지난해까지 전담 인력 1명을 투입해 포털 카페와 블로그 등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왜곡·폄훼에 대응해 왔지만 예산 부족으로 올해부터는 모니터링 인력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에 용역을 주고 중앙 신문사와 방송사를 대상으로 왜곡·폄훼를 조장하는 기사들을 모니터링하고 삭제 요청을 하는 등 대응을 해왔다.
지난해 9월부터는 이에 더해 왜곡·폄훼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을 대상으로 5·18폭동, 북한군, 가짜 유공자 등 키워드를 입력하면 관련 콘텐츠를 취합하는 AI 모니터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왜곡과 폄훼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이라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5·18기념재단이 5·18역사 왜곡 저지를 위한 예산으로 광주시에 2억 원을 요청했지만 예산이 대폭 삭감돼 현재 5·18역사 왜곡 저지 대책에 배당된 예산은 1900만 원뿐이다. 1900만 원 중에서도 사실상 법률 자문에 소요되는 비용이 절반 이상인 1천만 원으로, 왜곡·폄훼에 대한 모니터링 등 선제적 대응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고작 900만 원뿐인 셈이다.
청소년 사이 인기 끈 '그날의 광주'…청소년 대상 5·18 교육 시급
특히 이번 로블록스 '그날의 광주' 게임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 제작자가 청소년이라는 정황이 나오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5·18민주화운동 교육 등이 시급하지만 관련 교육은 미흡한 실정이다.
5·18기념재단이 실시한 2023년 5·18민주화운동 인식 조사 결과 전체 연령대에 대한 5·18 인지도는 63.7점이지만, 청소년(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 대상)으로 한정하면 5·18 인지도는 54.5점으로 10점 가까이 낮다.
이처럼 청소년들에 대한 5·18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현재 5·18기념재단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전부고 청소년 대상 교육은 아예 빠져있다. 가장 큰 원인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관련 예산 부족이다.
5·18기념재단은 당초 5·18민주화운동 진실 알리기 영상 제작과 함께 광주시교육청과 협업해 전국의 시도교육청을 통해 오월 교육을 강화하는 사업을 고려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5·18 왜곡·폄훼에 대한 대응을 위해 모니터링과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5·18 왜곡·폄훼에 대응하는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의 인력이 각각 2명과 3명이지만, 이들은 5·18 진실규명 등의 업무를 겸하고 있다.
새로워지고 다양해지는 5·18민주화운동 왜곡과 폄훼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광주시의회의 추경예산 심의에서 관련 예산이 부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