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은 호러 영화 '톡 투 미'의 대니 필리푸, 마이클 필리푸 감독에 이어 다시 한번 호주 출신 감독에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악마와의 토크쇼' 캐머런 케언즈, 콜린 케언즈 감독은 1970년대 토크쇼라는 콘셉트 안에 의심과 불신, 폭력을 뒤섞어 새롭고 독창적인 오컬트 호러를 탄생시켰다.
1977년 핼러윈 전날 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일단 틀고 보는 방송국 놈들 때문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송사고 발생한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그날 밤의 생방송 '악마와의 토크쇼' 녹화영상이 최근에 발견됐다. 47년간 숨겨진, 절대 생중계돼서는 안 될 최악의 토크쇼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영상과 함께 마침내 공개된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와 오컬트 명작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악마와의 토크쇼'는 호주 출신 캐머런 케언즈, 콜린 케언즈 형제 감독이 어릴 적 본 '돈 레인 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1970년대 토크쇼 콘셉트의 오컬트 호러다.
영화는 1970년대 미국을 의심과 불신 그리고 폭력의 시대로 정의하고 시대 상황을 비추며 시작한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인한 좌절 등으로 인해 국가적인 무기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불안한 사회를 달랬던 것은 토크쇼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의심' '불신' '폭력'이라는 코드로 사회를 정의한 영화 속 토크쇼는 의심과 불신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결국 폭력적인 상황으로 나아간다. 미디어가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리고 이후 영화의 전개를 생각할 때 여러모로 재밌는 지점이다.
그렇게 '올빼미 쇼'에는 영매와 마술사 출신 회의론자로 시작해 악마에게 빙의된 소녀와 초심리학자까지 등장한다. 지금까지도 존재 여부와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둘러싸고 의심과 불신 그리고 이에 맞서 진실이라 주장하는 출연자들의 반박이 날카롭게 오간다.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려는 TV 토크쇼의 무대 뒤편에서도 시청률을 둘러싸고 위험한 방송을 강행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대립이 오간다.
이렇듯 영화는 대척점에 선 사람들과 그들의 주장이 그 경계 앞에서 맞붙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믿음 그리고 의심과 불신의 치열한 대립을 지켜보는 와중에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과연 진짜인지 아니면 TV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거짓인지 토크쇼 속 방청객들처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47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생중계 화면이라 말하는 영화 속 진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는 사이에 영화는 관객들의 내면에도 의심과 불신을 쌓는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오컬트 장르에 걸맞은 엔딩을 마주한다.
영화는 중간중간 잭이 속한 그로브만의 제의 등 여러 행위를 보여준다. 이는 잭이 속한 그로브가 악마적인 의식을 진행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지고, 릴리(잉그리트 토렐리)가 잭을 알고 있다고 한 발언이 새삼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러한 의심을 앞선 이야기들과 여러 상징, 사회적인 배경 등과 함께 생각해보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혼란한 시대 미디어에 관한 그리고 한 개인의 욕망에 관한 호러적인 풍자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영화 후반 잭이 속한 남성으로 이뤄진 폐쇄적인 사교모임 그로브(보헤미안 클럽 혹은 보헤미안 그로브)의 은밀한 의식을 빗댄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장면이다.
잭 델로이의 토크쇼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 시청률 만능주의가 만들어내는 폐해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은 콘텐츠는 결국 의심과 불신, 폭력의 시대 속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보다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안에서 잭에게 '올빼미 쇼' 무대는 자신의 재기를 위한 일종의 의식이며, 출연진과 시청자들은 이를 위한 제물 같은 존재다.
잭과 방송사의 행태는 결국 TV라는 매체가 어떻게 사회를 반영하는지 그리고 시청률을 위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며 경계를 오가고, 심지어 그 경계를 넘는지 등 미디어의 어두운 면을 비춘다. 악마를 소환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잭이 결국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시청자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장면 외에도 영화 속에는 여러 가지 메타포를 비롯해 다양한 당대 실존 인물, 시대상,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자신만의 의심을 통해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 또한 '악마와의 토크쇼'를 즐기는 방법이다.
'듄' '오펜하이머'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리고 '앤트맨' 시리즈 등에서 짧지만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던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악마와의 토크쇼'를 통해 그가 얼마나 재능 있는 배우인지 그리고 원톱으로서 충분히 영화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배우인지 입증했다.
최근 '톡투미' 등 호주 출신 감독이 자신만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통해 독특한 호러 영화를 만들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악마와의 토크쇼'라는 독특한 호러를 만들어낸 캐머런과 콜린 케언즈 형제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 역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92분 상영, 5월 8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