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두고 갈등을 이어가는 정부와 의료계가 이달 중순 '법원 결정'을 앞두고 증원 근거 자료인 '회의록'을 두고 또 다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에 "과학적·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근거'를 내놓아야 할 입장에 내몰렸다. 정부의 자료 제출에 맞춰 의료계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참고자료를 법원에 낼 예정이다.
복지부 "보정심 회의 결과 낸다"…협의체 회의록은 보도자료로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10일까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 결과 등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전공의·수험생 등 18명이 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의대 정원 증원 처분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기일에서 정부 측에 의대 증원 처분 관련 추가 자료와 근거들을 10일까지 법원에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또 정부가 근거 자료를 제출하고 재판부의 인용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 증원과 관련해 보정심, 의료현안협의체, 의대정원 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등 회의체를 운영해왔다.
이에 복지부는 법원 요청에 따라 보정심 회의록 등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위원회로, 사실상 보건의료 정책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
지난 2월 복지부 장관은 보정심을 주재하며 2025학년도 대학 입시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결한 바 있다.
정부는 그러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와 관련해서는 회의록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회의 당일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고 백브리핑을 실시해 회의 결과가 이미 공개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료계로부터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자 복지부는 협의체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기로 의협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법정 기구가 아니어서 별도의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당시 협의체에 참석한 이정근 전직 의협 부회장도 "보도자료로 회의록을 갈음하기로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부는 배정위 명단과 회의록과 관련해서는 심사위원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을 우려하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결과 등 법원이 요구한 관련 자료를 충실히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이외 할 말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의료계가 의대 2천명 증원에 반발할 때마다 '객관적 근거를 가져오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대국민담화에서 "정부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2천명 의대정원 증원을 결정했다"면서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제안해야 한다"고 밝혔고,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민수 2차관도 이 같은 주장을 거듭했다.
이처럼 그동안 '객관적 자료'에 무게를 실어 의료계를 압박하던 정부가 지금은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긴장하는 모습이다.
전의교협 "배정위 회의록 있나?"…전문가 수십명 '꼼꼼히 검증' 예고
반면 '근거 자료 공방'에서 수세에서 공세로 태세를 전환한 의료계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근거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의대 증원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면서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6일 SNS에 올린 글에서 "백 년 국가 의료정책에 대해 회의 후 남은 게 겨우 보도자료밖에 없다. 밥알이 아깝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 회장은 "정부가 현장 상황(의대)조차 파악을 안 했던 것으로 안다"며 "향후 정부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자료를 법원에 낼 예정"이라고 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관련 회의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본격적인 반전 국면이 시작될 듯하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이날 성명문을 내고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근거를 요구했다.
전의교협은 "정부는 의대정원배정심사위원회 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바, 그 회의록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며 "뒤늦게 일부 회의의 녹취록을 짜깁기해 억지로 회의록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과 정원 배정 과정이 주먹구구식 밀실 야합으로 진행된 것임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배정 주요 회의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관련 법령을 위반한 담당 공무원을 법과 원칙에 따라 즉각 문책하고 사과하라"고 덧붙였다.
전의교협은 전문가 30~50명을 투입해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료계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결정하면서 관련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았다며 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등 5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할 예정이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와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지난 2월 6일 복지부 산하 보정심이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2천명으로 심의할 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은 직무 유기와 공공기록물 은닉·멸실 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