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첫 회담을 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야당과의 소통·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합의문이 나오진 않았지만 소통 의지를 확인했고, 의료 개혁 등 민생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이뤄 의미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태원특별법 등 쟁점 현안에서 양측이 평행선을 달렸다는 점은 협치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향후 추가 회담 여부에 대해서도 주목되고 있다.
대통령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이날 회담 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은 갈등이 첨예한 정국을 정상화해서 정치를 복원하고, 여야 간 협치를 위해 선의와 성의를 갖고 회동에 임했다"며 "이번 회담에 대해 야당과의 소통, 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민생 문제와 국정 현안을 논의했고, 협치의 시동을 걸며 총선 민심에 수긍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영수회담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차담 형식으로 오후 2시부터 2시간 15분 간 진행됐다.
이재명 대표, 공개 회담에서 15분 간 "깜짝 발언"
대통령실은 민감한 의제 역시 회담 테이블에 올라왔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회담 모두 발언에서 A4 용지를 꺼내 15분 간 현안을 언급하면서 의제를 모두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날 이 대표의 다소 긴 발언은 사전 협의는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애초에 '경청하겠다'는 원칙에 따라서 한 것"이라며 "비공개 이후 모두발언에 나온 의제들도 물리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긴급민생회복 지원금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용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등을 언급했다. 아울러 "가족 등 주변 인사의 의혹도 정리했으면 좋겠다"면서 김건희 여사 문제도 에둘러 거론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예상했던 의제라는 반응이다. 비공개 회담에선 윤 대통령의 답변 시간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130분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말을 한 시간은 85대15 정도 비율이었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이 대표가 화두를 꺼내면 윤 대통령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상당히 많은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선 공감을 한다"면서도 "다만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해소하고 논의하면 좋겠다"라고 적극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독소 조항만 없어진다면 합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손해배상소송과 관련 "1차 판결이 만약에 난다면, 유가족이 동의한다면 더 이상의 항소를 하지 않을 생각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또 긴급민생회복 지원금에 대해선 "물가, 금리, 재정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 상황에선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며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대신 정부가 추진 중인 소상공인 지원 방안 등을 설명하며 정부가 추진 중인 걸 먼저 시행하고, 필요할 경우 야당이 제기한 부분에 대해 여야가 협의하자는 취지로 언급했다.
비공개 회담에선 '채상병 특검법'이나 '가족 등 주변 인사 의혹 정리'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신임 국무총리 인사와 관련한 얘기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통, 협치에 첫 발은 뗐지만 쟁점 현안에 대해선 시각차를 드러냈고 민감한 현안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회담 결과 합의문 역시 없이 양측이 각각 따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합의문'은 없었지만 의료개혁 등 성과…향후 만남 주목
그렇다고 현안에 대한 성과가 아예 없었다는 건 아니라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이 수석은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 부분은 있었다"며 의료 개혁과 의대 증원, 추가 회동, 민생 현안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을 꼽았다.
이 대표는 회담에서 "의료개혁이 시급한 과제이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고,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면서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의료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여야 협치는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정부에서 최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민주당이 제안한 국회 공론화 특위를 두고 사회적 대화 노력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에선 정부 핵심 과제인 연금개혁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입장차가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국회 공론화 위원회에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방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국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고 많은 데이터를 이미 제출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는 연금개혁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윤 대통령 의견에 이 대표가 감사를 전했다면서도, 신속히 윤석열 정부에서 결정할 시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 하기는 어려우니 22대 국회에서 좀 더 논의하고 결정하면 어떻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KBS '뉴스9' 에 출연해 "회담 말미에 '다음번에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배석자 없이 두 분만 따로 만나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씀을 던져봤는데, 두 분 모두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했다. 정 실장은 회담에 대해 "열린회담이었고, 야구용어로 얘기하면 '퀄리티 스타트'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발투수를 평가하는 용어인 '퀄리티 스타트'는 선발 투수가 6이닝 이상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상대에 3점 이하 자책점 이하로 막아낸 경우를 뜻한다. 윤 대통령이 첫 회담에서 충돌 없이 소통과 경청의 자세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동이 주기적으로 정례화하는 단계로까지는 진전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해 '여야정협의체'와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국회란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며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양측이 종종 만나자고 한 만큼, 필요할 때 협의를 통해 만남을 주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 직후 대통령실 수석 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것을 자주 해야겠다. 우리가 다음에는 국회가서 하는 건 어떠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첫 만남에 모든 성과를 다 기대할 순 없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만남으로 쟁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