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출범한 국민의힘에서 조만간 정상 지도체제를 유지한 기간보다 비상대책위원회,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 등 비정상 체제를 가동한 기간이 더 길어진다.
비대위와 당 대표 체제를 반복하던 중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초기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기 뿐이다. 나머지 비대위는 고착화된 수직적 당정관계 속 민심을 받들지 못했고, 당 대표의 당권 역시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고질적인 수직적 당정 관계 문제 때문에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20일 가까이 전당대회 준비용 관리형 비대위원장을 추천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5월 3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도 친윤계 이철규 의원의 단독 출마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의지가 과연 있는가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1335일 중 674일만 정상 체제…나머지는 비대위·권한대행
28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개정하는 안이 미래통합당 전국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날까지 1335일째 존속하고 있다.그런데 1335일 중 정상적인 당대표가 들어서 지도체제가 유지된 기간은 이준석 대표 시절 393일과 김기현 대표 시절 281일을 합친 674일에 불과하다.
나머지 661일은 모두 당대표가 임기를 채주지 못고 낙마해 권한대행이 당을 이끌거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시행된 기간이다.
비대위 체제 중에서는 21대 총선 참패 이후 지난 2021년 4월까지 존속된 '김종인 체제'에서만 당 체질 개선을 위한 약자와의 동행, 서진정책 등이 주목을 받으며, 4.7 재보궐선거 승리라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준석 전 대표 낙마 이후 주호영·정진석 비대위 때에는 연판장으로 대표되는 '윤심' 경쟁이 펼쳐졌고, 김기현 전 대표 사퇴 이후 한동훈 체제에서도 정권 심판론에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며 총선에서 참패했다.
지금도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사퇴 이후 윤재옥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비정상 체제다. 국민의힘은 오는 29일 세번째 당선자 총회에서 비대위원장 인선과 관련한 상황을 공유하고, 다음달 3일 원내대표 선거 이전에 비대위원장을 지명할 계획이다.
전당대회 준비에 약 2달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정상 체제가 더 길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쇄신·용산과 관계 변화보다 단일대오만 선호…"다들 눈치만 봐"
당내에서는 현재 상황은 확실한 비정상이지만, 당 안팎의 움직임은 비상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이날 페이스북에 "총선 참패의 근본 원인은 정부와 여당의 실패 때문"이라며 국정기조·당정관계의 대전환에 나서자고 제안했지만, 이는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반대로, 당내 다수는 총선 이후 쇄신론 및 용산과의 관계 재설정 등이 가져올 갈등과 분열을 피하고,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빠르게 전당대회를 치르자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당내 여론이 이렇다 보니 전당대회 준비용 비대위를 맡아 줄 위원장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임기도 두 달 여에 불과하고, 혁신과 같은 자기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는 빈 껍데기와 같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차기 비대위원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자리라는 인식이 공공연한데 어떤 정치인이 선뜻 자원하겠나"라며 "무엇을 하려고 하면 욕만 먹을 처지라 정치인 개인에게 이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22대 국회 초반 여당을 이끌 원내대표 선거전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단일대오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며, 비윤계로 꼽히는 후보들의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국민의힘에 친윤 아닌 사람은 없고, 지금은 야당에 맞설 리더십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주요 후보 중 한 명으로 여겨졌던 김도읍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김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가 친윤 대 비윤 구도로 비춰지면서 자신이 비윤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선거 구도는 친윤계의 대표주자인 이철규 의원에게 더 유리해진 상황이다. 안철수 의원이 "총선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당정의 핵심관계자들의 성찰을 촉구한다. 특정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성찰-혁신-재건의 시간을 위한 2선 후퇴를 호소 드린다"고 했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아예 친윤계 의원을 추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실제 출마하려는 의원도 없는데다 이철규 의원 본인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겨우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남권 재선 당선인은 "원내대표 선거에 친윤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하면, 국민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습겠나"라며 "누구라도 소신을 밝혀 줄 사람이 나와준다면 좋겠는데, 지금은 다들 보면 눈치만 보고 있고, 21대 국회보다도 적극성이 더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