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영롱함을 넘어서'는 처음 물방울을 대면했던 순간의 영롱함을 화면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화백의 조형적 의지의 표상이자, 대표작으로 불리는 1970년대 물방울을 뛰어 넘고자 했던 50년간의 미적 여정을 의미한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터전을 옮긴 후 근교 마구간에서 생활하던 화백은 1971년 어느 아침,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려둔 캔버스에서 물방울을 발견하게 된다.
"캔버스를 뒤집어놓고 직접 물방울을 뿌려 보았어. 꺼칠꺼칠한 마대에 매달린 크고 작은 물방울의 무리들, 그것은 충분히 조형적 화면이 성립되고도 남질 않겠어. 여기서 보여진 물방울은 하나의 점이면서도 그 질감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새로움의 발견이었어. 점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감도라 할까. 기적으로 느껴졌어."(1976년 미술평론가 이일과 화백 박서보와 나눈 대담 중)
반응은 뜨거웠다. 초현실주의 시인 알랭 보스케는 "김창열의 물방울은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서보는 화백의 작업실에서 물방울 회화를 마주한 뒤 "사방 벽이 온통 물방울로 가득 찼더군. 흘러내리면 집에 홍수라도 날 만큼 말이야. 아이 하나쯤 익사할 것만 같던데"라고 평했다.
화백은 실제 같아 보이지만 철저하게 조형화된 물방울을 마로 된 천, 모래, 신문, 나뭇잎, 한자 등에 놓아 실재와 가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중성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1층 전시장에서는 1970년대에 화백에 의해 발견되고 선택된 물방울이 시간과 중력을 초월하며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작품은 실제 물방울이 캔버스 위에 맺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2층 전시장에서는 중력과 시간을 거스르며 영롱하게 맺혀 있던 물방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출품작 '물방울'(1979)의 경우 물방울 중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화면 위에 맺혀 있는 모습이다. '물방울 CSH27-1'(1979)은 물방울의 점도가 달라진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1980년대 이후 제작된 '회귀'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표면의 글자를 확대하거나 가리고, 글자 위에 색을 칠한 후 글자 부분만 뜯어내는 등 다양한 변주와 실험이 돋보인다.
김시몽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명예관장은 "김창열이 평생 물방울만 그렸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그림을 보면 같은 물방울들은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