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이' 이봉주(54)가 다시 뛰었다. 투병 후 처음이다. 4년 만에 레이스에 나섰다. 지난 21일 강원도 삼척 엑스포 광장에서 열린 '제28회 삼척 황영조 국제마라톤대회'에서다. 이날 경기의 숨은 1등은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였다.
이봉주는 지난 2020년 원인 불명의 통증에 시달렸다. 이후 난치병(근육긴장이상증·Dystonia) 판정을 받았다. '근육긴장이상증'은 특정 근육이 멋대로 긴장·수축해 비정상적 자세로 신체가 고정되는 질병이다.
지난해 6월 이봉주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때도 허리가 심하게 굽어진 상태로 나타나 한눈에도 고충을 짐작케 했다. 당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임한다면 또 좋은 날이 온다"며 병마 극복 의지에 대한 다짐과 함께 재기를 약속했다. (CBS노컷뉴스 6월 28일자 보도·[노컷 인터뷰]1729km 뛰 이봉주의 '울림' 메시지 "포기하지 않으면 또 좋은 날 온다")
이날 이봉주의 레이스 출전은 자신은 물론, 국민과 약속을 지킨 것을 의미하기에 많은 국민에게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 그는 15개국 외국인 200여 명 등 5000여 명과 함께 달렸다. 아직 완치된 몸이 아니기에 150m 가량의 레이스를 벌였다. 이날의 150m는 그에게 42.195km 완주보다 값진 거리였다.
특히 그의 영원한 마라톤 동지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곁을 지키며 함께 달려 훈훈함을 더했다. 이봉주는 지난 6월 인터뷰에서 "황영조는 영원한 친구다. 아내도 황영조에게 소개를 받았다. (황영조는) 같이 가야할 평생의 동지"라며 애정을 드러낸바 있다.
CBS노컷뉴스와 22일 인터뷰에서 이봉주는 지난해 6월과 달리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목소리에서 4년 만에 첫 레이스를 한 흥분이 느껴졌다. 몸이 호전된 시기와 계기에 대한 질의에 이봉주는 "지난해말부터 조금씩 몸이 좋아지기 시작해 곧은 허리로 뛸 수 있었다"며 "재활을 열심히 하고 홈 트레이닝도 꾸준히 한 결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대회 당일 레이스가 힘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주말마다 조금씩 뛰는 훈련을 꾸준히 해 괜찮았다. 무리하지 않고 150m만 뛰었기에 (지금도) 컨디션이 좋다. (대회 당일) 황영조가 옆에서 뛰고 있어 더욱 힘이 났다"고 설명했다.
차후 계획을 묻자 "(아직 몸 상태가) 100% 돌아온 게 아니다. 노력해서 5km, 10km, 그 이상을 뛸 수 있게 몸을 만드는 게 최대 목표다. 지켜봐 달라. 더 나은 모습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뛰는 모습을 기대해 달라"며 보다 발전한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설 것을 약속했다.
대회 개최 당일은 그에게 특별한 날이기도 해 이날 레이스는 더 빛이 났다. 21일은 이봉주가 '삼척의 사위'가 된 결혼 기념일이었다. 고인이 된 장인 김영극 씨와 매년 참석한 대회였음을 회상한 듯 그는 "장인 어른이 함께 못 오시게 돼서 안타깝다. 아마 행사장 어딘가에서 지켜 보시며 (오늘의 레이스를) 축하해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봉주는 마라톤 한국 신기록 3회 달성에 빛난다. 2시간 7분 20초의 기록은 23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이 같은 이력과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점 등을 높이 평가해 2022년 그를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했다.
'불멸의 마라토너, 희망의 아이콘, 마라톤 레전드, 철인, 국민 영웅, 봉달이' 따라 붙는 애칭에 걸맞게 이봉주는 대회 당일에도 최고 인기였다. 이날 부대 행사로 열린 '이봉주·황영조 팬 사인회'에는 발 디딜 틈 없이 팬들이 몰렸고, 대회 장소 곳곳에서 사진 요청이 쇄도했다.
이봉주의 건강한 모습에 응원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대회장을 찾은 박삼수 삼척시장은 "오늘 이봉주 선수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고 응원했다. 그를 직접 찾은 시민들도 연신 '파이팅'을 외치며 그의 호전된 모습에 환호를 보냈다.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봉달이의 질주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