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나면 여야가 민심 앞에 겸손해지는 시간이 온다."
총선 전 한 국회 관계자가 한 말이다. 통상 국회 임기가 한 달여 남았을 때, 여야가 합심해 그동안 쌓여있던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4·10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은 '민생'을 앞세워 정부·여당에 공세를 펴고 있고, 여당은 참패 뒷수습에 여념이 없어 협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1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여야는 5월 임시국회 본회의 날짜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등 협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5월 2일과 28일에 본회의를 열고 밀린 법안들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서두를 필요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본회의에 현 정권을 겨누는 '채상병 특검(특별검사)법' 등 쟁점 법안이 자동 부의된 터라 여야가 기 싸움을 펼치는 모양새다. 국회의장의 중재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답보 상태로, 본격적인 협상은 미국 순방 중인 김진표 의장이 귀국하는 오는 22일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연일 경제 상황 악화를 지적하며 민생 회복을 위해 여당에 법안 처리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21대 국회에서 민생을 위한 시급한 입법 과제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총선의 민의를 받드는 것"이라며 "여당은 빨리 총선 후유증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생 법안을 처리하자고 여당에 제안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돌아온 답은 '별 뜻 없다'는 것"이라며 "굉장히 유감스럽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당만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입장"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 원내수석부대표가 언급한 방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들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않으면 법안을 소관하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이날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2월 야당 주도로 법사위로 회부했던 이른바 '제2 양곡관리법 개정안'·농산물 가격 안정법 개정안 등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의결했다. 직회부에 반대해 회의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국회법을 무시한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라고 반발했다.
이 밖에도 21대 국회엔 1만6천여개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위헌 법률 개정, 정치개혁 법안 처리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에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자당 소속 상임위원장 및 상임위 간사들과 오찬 회동을 가지며 21대 국회 남은 기간 쟁점 법안 처리 방법 등을 논의했다. 홍 원내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약간의 쟁점이 있는 법안들은 일부라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여당과 타협하고 협의해서 처리하자고 했다"며 "주로 요즘 사회적 쟁점이 되는 가맹사업법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민생 법안'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으로, 민주당은 오는 23일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본회의 직회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또 여야 입장이 선명하게 갈리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안도 같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이태원참사특별법,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등을 처리하겠다고 밝혀 5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