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중심의 비윤계 인사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개 '수도권 지도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차기 당 대표 선출에서 비당원 표의 몫을 부활시키는 등 개혁적 메시지에 뜻을 모으고 있다. 다만 22대 국회에서 세력화가 가능할지 여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김용태‧김재섭 당선인은 18일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세미나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현재 국민의힘의 반성 없는 태도에 대한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4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 세미나의 주최자였다. 해당 세미나에선 "비대위는 원래 총선 백서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 당은 그럴 용기도 리더십도 없다"(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국민의힘이 아니라 영남의힘"(박상병 시사평론가)이라는 등 총선 패배에 대한 대통령실, 또는 당의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윤 의원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은 영남 중심당의 한계에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인 곳과, 공천을 받고도 무수히 날아가는 수도권의 현실 갭을 극복해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건 혁신이다. 관리‧실무형이 아니라 혁신 성격의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총선 패배에 대해선 "당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대통령에 책임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섭 당선인과 김용태 당선인은 이곳에서 총선 참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보조를 맞췄다. 김재섭 당선인은 "괴멸적 패배를 당했는데도 앞으로 있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 '희망회로'일 뿐이다. 냉철한 복기가 우선"이라며 "조기 전당대회가 아니라 처절한 백서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특히 "전당대회 룰에 당원 100%(대표 선출)를 유지하는 데 분명히 반대 입장을 표한다"라며 "혈세를 받아 운영되는 여당이 국민 참여를 막아놓은 상태로 전당대회를 치르는 건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현재 경선 룰에 따르면 대표는 당원 투표 100%로 선출된다. 지난해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기존의 '당원투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 선출 방식을 고친 결과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표 선출에 보수 지지층의 당심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김용태 당선인 역시 "이번 총선으로 국가개혁을 이끌어 갈 추진력이 상실된 원인은 공정함에 대한 신뢰관계가 깨진 것"이라며 "총선 백서를 빨리 작성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초 '비윤'으로 분류됐던 이들이 당의 반성과 쇄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이고 반복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김재섭 당선인을 중심으로 한 당내 3040 청년 정치인들의 세력 규합 여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박상수 후보(인천 서갑)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매달 첫 목요일에 회동하는 '첫목회'의 결성을 알렸다. 김 당선인을 비롯해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이상규 후보(서울 성북을), 이승환 후보(서울 중랑을), 이재영 후보(서울 강동을), 전상범 후보(서울 강북갑), 한정민 후보(경기 화성을) 박은식 후보(광주 동남을) 등 3040 정치인들이 중심이다. 이들은 당내 '소장파'의 몫을 해낼 거란 평가를 받고 있다.
박 후보는 "슬프게도 우리 당은 원내보다 원외 당협위원장이 더 많은 정당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 그나마 소득은 그 원외 당협위원장의 압도적 다수가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 기르며 살아내야 하는 3040세대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낙선했지만, 저희 세대의 정치를 한번 해볼 생각이다. 우리 활동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윤' 인사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은 당내 친윤 주류 시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된다. 새 대표 선출만 해도 당내 여론은 우선 '관리형 비대위가 이끄는 전당대회'로 모이고 있지만, 여기에 이들이 '수도권' '비당원 일반 민심'에 손을 들어주며 균열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향후 이들 당선인들의 실질적인 원내 세력화 가능성은 아직 분명치 않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비윤계의 영역이 커져가고 있는 건 맞지만, 아직은 이 모든 세력을 포괄하면서 분명하게 구심점을 자처하는 인사가 없다"며 "구심점이 되려면 경험은 물론 당심의 지지도 충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