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총선 참패 이후 엿새 만에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총선 참패에 따른 민의를 철저히 외면한 채 국정운영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모자랐다"고 말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는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하지만 국정운영 쇄신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실정에 대한 사과나 반성, 야당과의 협치는 꺼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2년간 국정의 방향이 옳았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정책추진의 실행력과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에 책임을 돌렸다.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준 총선 민심은 독선과 불통의 국정운영을 쇄신하고 국정기조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입장표명은 형식과 내용 모두 부적절했고 패배원인에 대한 성찰도 없는 동문서답에 다름아니다.
민심이 준엄한 심판을 내렸는데 총선 엿새 만에, 그것도 국무회의 발언 형식을 빌어 입장을 밝힌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TV로 중계된 공개발언에서는 사과란 표현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다가, 비공개 회의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고 참모들이 대신 전한 대목에서는 진심이 전달되지도 않는다.
내용도 민심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물가 관리와 건전재정, 주식시장, 수출, 탈원전, 경제활성화 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찬한 뒤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물가로 고통받는 서민이나 지난해 87조원의 대규모 재정수지 적자, 감세 논란, 개발공약 남발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발언에는 방향은 맞는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억울함이 느껴진다.
집권 2년도 되기 전에 총선민심이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단순한 정책의 문제 뿐 아니라 독선과 불통, 공정의 문제가 켜켜이 쌓인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협치의 문제나 해병대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은 모두 외면했다.
영수회담과 관련해서는 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서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한 것과 달리 대통령실에서는 실무 차원에서 의제를 사전 조율해야 하고 여당 지도체제를 갖추기까지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성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나 윤 대통령이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라며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은 총선 민의가 요구하는 협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했을 뿐 야당이라는 표현조차 사용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갈등 조정과 문제 해결에 있지 않을까? 미우나 고우나 거야의 협조를 받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은 정책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집권 초반 이례적으로 낮은 국정운영 지지율과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는 이번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으로 되돌아왔다.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또다시 총선 전과 후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민심에 맞서겠다는 것이요 결과는 혼란과 분열,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어떤 경우든 대한민국에는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