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 둔 15일 낮, 대여섯평 남짓한 세월호 기억공간 위로 제법 차가운 봄비가 내렸다. 각종 집회로 시끄러운 서울시의회 정문 앞 광장은 비 때문인지 이날만큼은 한적했고,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이 한 둘 눈에 띄었지만 이들은 이내 우산을 받쳐 들고 갈 길을 재촉했다.
'출산율 반등 서울시의회가 앞장서겠습니다'라는 큼지막한 현수막. 그 아래 목재로 마감한 가건물은 노란리본과 함께 '기억과 빛'이라고 새긴 작은 간판이 아니면 이곳이 세월호 기억공간인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만큼 시의회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25. 세월호 기억공간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건 지난 2021년 11월 3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기억공간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그해 7월 서울시의회가 중재에 나서 공사기간 동안만 임시로 기억공간을 시의회 앞마당으로 옮기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임시 이전'이었으므로 규모를 축소해 이전했는데, 광화문광장 공사는 진작에 끝났지만 '임시' 기억공간은 그 자리에 터 잡은지 벌써 햇수로 3년 차를 넘겼다. 재구조화가 끝난 광화문광장은 열린광장으로 건물이나 구조물을 세우지 않겠다는 서울시 방침에 세월호 기억공간의 재이전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임시 기억공간 존치기간 만료일인 2022년 6월 30일은 훌쩍 지나버렸고, 그 다음날부터 기억공간은 불법 점유물로 전락했다. 서울시의회 사무처는 유족 측의 부지사용 기간연장 신청을 거부했고, 그해 7월 행정대집행 계고장 발부, 8월 원상회복 명령 촉구 공문 발송 등 철거를 위한 행정절차를 이어갔다.
지난해 5월에도 자진철거 계고장을 유족 단체에 발부하는 한편으로 매달 변상금 부과도 이어오고 있어 현재까지 수천만원의 변상금까지 쌓였다. 서울시의회 공유재산을 관리하는 사무처가 언제고 철거에 나서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고, 기억공간 존치기간 연장과 사용료 면제를 위해 동의안까지 의결했던 서울시의회도 더 이상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한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였던 10대에서 국민의힘 우위의 11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철거 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말들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 게다가 국가차원으로 추진해 당초 10주기에 맞춰 개관할 예정이던 안산 4.16생명안전공원도 완공시기가 2년이나 미뤄졌다.
결국 세월호 기억공간은 당장 갈 곳을 잃은 채, 그렇다고 임시로 마련한 자리 위에서 불법점유물이란 딱지를 떼지도 못하고 위태한 나날을 이어가는 중이다.
다행이라면 아직까지 기억공간에 대한 행정대집행(철거) 움직임이 가시화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 앞서 설득으로 풀어가되 철거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는 서울시의회 사무처는 이날 기자에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추후 논의될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세월호 기억공간 대안마련을 위한 TF' 단장을 지낸 이병도 시의원(은평2)도 "아직 새로운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의원은 "생명안전공원이 완공되는 2026년까지만 기억공간을 존치시키는 안을 갖고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이 세월호 기억공간 존치기간 연장 쪽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세월호 10주기 하루 전날, 서울시의회 국민의힘이 낸 논평이 주목된다.
최호정 대표의원(원내대표) 명의로 낸 논평에서 국민의힘은 "참혹했던 만큼 서로 보듬고 어루만져야할 상처를 오히려 지난 10년, 헤집고 도려내기 급급해 온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갈라치기가 아니라 역지사지와 이해"라고 강조했다.
그간 강경 일변도에서 분위기 변화가 일부 감지되는 논평이다. 그러면서도 "망자의 넋이 머무는 시간에는 새 생명이 돋아날 수 없다"라고 달리 해석될 여지도 남겼다. 서울시의회 앞마당 다섯평 남짓한 공간 위, 돌아갈 곳을 잃은 채 서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