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1955)은 같은 해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준 이후 70년 만에 처음 경매에 출품됐다. 1955년,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과 재회를 꿈꾸며 서울 미도파화랑과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연 이중섭이 전시 성공에도 판매대금을 받지 못해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없게 되자 절망 속에서 그린 그림이다.
당시 오랜 친구인 구상의 왜관 집에 머물던 이중섭은 구상이 자신의 아들과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약속한 자전거를 사주지 못한 부러움과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자신의 모습을 화면 우측에 덩그러니 그려 넣었다. 구상에 의하면 자신이 아이들에게 세발자전거를 사다 주던 날의 모습을 이중섭이 스케치해 가족사진이라며 준 것이라 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화면 왼쪽 끝에서 구상의 가족을 등지고 돌아선 여자아이다. 이 소녀는 구상의 집에서 의붓자식처럼 잠시 머물던 소설가 최태응의 딸로 이중섭은 소녀와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작가는 14억 원.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살보의 'Novembre'(2008·추정가 9800만~1억5천만 원)와 이사무 노구치의 'Black and Blue'(3천만~6천만 원)도 출품됐다. 이들 작가의 작품이 국내 경매에 출품된 건 처음이다. 'Novembre'는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을 주제로 작업했던 살보의 후기 대표적인 도상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보라빛으로 물들어가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목가적으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