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압승으로 동력을 확보한 범야권이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위해 대여(對與)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총선으로 민심을 확인한 만큼 여권 내 일각에서는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권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상황인 만큼 정국 주도권을 너무 쉽게 내줘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선 후 첫 주말부터 시작된 巨野 공세…민주·조국 "즉각 특검법 수용하라"
총선 후 첫 주말인 14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일제히 여당인 국민의힘을 향해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촉구했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총선의 민의를 받들어 반성하고 있다면 '채상병 특검법'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즉각 특검법을 수용하고 진상규명에 협조하시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총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을 권력의 힘으로 찍어 눌렀다. 멀쩡한 사람을 항명죄로 기소하고, 정작 피의자는 호주대사로 피신시켜 공수처의 수사를 방해하려고 했다"며 "그래서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채상병 특검법'은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윤석열 정권이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곧 국회를 통과할 특검법에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은 단호하게 윤석열 대통령을 거부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조국혁신당도 김보협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정을 바로잡겠다면 채상병 수사외압 특검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특검법 처리를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새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지, 아니면 우선 소나기나 피하고 보자는 '꼼수'인지 국민은 보고 있다"며 "채상병 특검법은 참과 거짓을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저희는 지금은 의석수가 단 하나밖에 없는 소수정당이어서 (특검법 추진을) 주도할 수가 없다"면서도 "민주당이 주도한다면 거기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해 어떤 형태로든 특검법 처리가 추진된다면 동참하겠다는 뜻을 강조하기도 했다.
의견분분한 여권…"찬성하거나 토론해야" vs "수사·재판 결과 기다려야"
이같은 야권의 요구에 여권 내 일각에서는 특검을 수용하거나,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권 잠룡 중 한 명이자 이번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를 통해 특검법에 대해 "저 개인적으로는 찬성"이라며 표결까지 갈 경우 찬성표를 던질 뜻을 밝혔다.
여권의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인도 지난 13일 MBC 라디오를 통해 "저는 채상병 특검에 관련해서도 우리가 받아야 된다고 본다"며 "우리 쪽에서 먼저 논의를 하고, 국민들께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털어내야 그 다음에 저쪽(야권)에서 공격을 해와도 덜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미 관련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데 여당이 특검에 동의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미 경찰과 군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각각 수사가 진행 중이고 군사재판과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데 별도의 특검을 시행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한 국민의힘 의원은 "채상병 사건은 헌병대가 수사를 못하게 돼 있는 상황에서 수사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박정훈 대령이 직권 남용한 사건"이라며 "민주당에서는 박 대령은 빼고 대통령과 이종섭 전 장관만 수사 대상에 올릴 것 아니냐"고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신원식 국방장관도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사법 절차를 믿고 기다리면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며 "만일 그게 미진하면 또 다른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서, 일단은 수사와 재판을 기다려보는 게 순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 등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정치사안부터 처리하자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당의 한 부산지역 당선인은 "지금 민생이 시급한 상황인데 특검을 언급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정쟁으로 여야가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선인은 "채상병 특검법이 여론에 떠밀려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21대 국회에서 논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본회의에 부의된 특검 밀어붙이려는 야권…지도부 공백에 깊어가는 與 고심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다. 21대 국회의 임기는 5월 29일까지로 처리 가능 시한이 한 달 보름여 정도 남아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총선 다음날인 지난 11일 비공개 회의를 통해 특검법을 임기 내에 처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석수 분포상 처리가 불가능하지 않은 데다, 총선을 통해 민심이 정권 심판론으로 향한 것을 확인한 만큼 법안 처리에 대한 부담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의석수 상 야권의 단독 처리를 물리적으로 막기 어려운 데다, 특검법 반대로 당론을 모으는 것도 총선 민심을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속 의원이 개인의 소신을 이유로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관리가 쉽지 않다.
당론을 모으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사유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서 지도부가 공백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양당 원내대표끼리 만나서 상의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협상을 유리하기 이끌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5일로 예정된 4선 이상 중진 당선인 모임, 16일 열릴 당선자총회 등을 통해 당내 여론을 수렴할 계획인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채상병 특검법의 수사대상이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 뿐 아니라 대통령실까지 포함돼 있는 만큼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총선 민심에 반한다는 비판론이 일수밖에 없고, 22대 국회의 경우 현 국회보다 선명성을 더 강조하고 있는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을 포함해 범야권 의석이 192석까지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