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 2019년에 이어 두번째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에 대해 "한 세기의 한국사를 엮은 서사적 이야기"라며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해 해방을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보통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소설은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한 대작이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염상섭(1897~1963)의 '삼대'가 떠오른다.
황석영은 출간 기자간담회 당시 "염상섭의 '삼대'가 일제식민지 부르주아 삼대를 통해서 근대를 조명해낸 소설이라면, 나는 3.1 운동 이후부터 전쟁까지 근대 산업노동자인 철도 노동자를 다루며, 그 뒤를 이었다"고 설명했다.
1847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삼대'는 조씨 가문 삼대의 인물들을 통해 시대적 서사를 그려낸다.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염상섭은 이 소설에서 조씨 가문의 당주이자 대지주인 조의관, 그의 장남인 조상훈과 손자 덕기를 통해 당시 현실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타락한 세태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상을 그려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조의관은 가문의 번영 제사, 부의 축적에 집착하는 구한말의 대표적 봉건적 인물이다. 장남 조상훈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자 기독교인으로 교육사업을 펼치는 일제강점기의 신식 청년이다. 아버지와 생각의 차이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타락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조의관을 닮아간다. 그의 아들 조덕기는 조부와 부친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름 객관적이고 선한 입장을 지켜려 노력하지만 그 역시 봉건적 가부장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덕기의 친구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김병화도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철도원 삼대'는 근대를 거쳐오는 동안 확장된 시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소설은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증손 이진오가 삼대 이야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삼대의 서사 속 조부 이일철(한쇠) 이이철(두쇠) 형제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고증 한다. 형 일철은 철도공작창 기술자였던 아버지를 이어 당시에는 드물었던 조선인 기관수가 되어 집안의 자랑이 되었고 철도공작창에 다니다 해고당한 동생 이철은 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황석영은 "3대 이야기를 4대째 후손이 들락날락 회상하는 식으로 소설을 구성했다. 일상이 멈춘 굴뚝에서 상상력으로 시간 여행이 재밌지 않냐"며 전개방식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는 1989년 방북 당시 만났던 '고향 어르신'(백화점 부지배인)과의 일화에서 자신과 같은 서울 영등포가 고향이었던 그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를 이어 철도원으로 일했던 부지배인의 경험은 황석영의 삶과 맞물려 근대와 현대를 횡단하는 열차의 대서사를 만들어냈다.
'삼대'에서 브루주아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계급혁명,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시대상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근대의 농민 운동에서 출발한 산업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을 일제강점기와 분단, 여성 인물들의 활약과 현대사의 흐름까지 보여주며 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한기욱 문학평론가는 "이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데서 한국문학의 근현대가 완성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삼대' 속에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부와 욕망의 근대적 삶에 천착한 인간 군상들은 '철도원 삼대'의 기착지에 다시 올라 식민지와 근현대사 속에서 가리워진 노동자의 삶으로 횡단한다. 그리고 100년을 지나온 기차는 다시 우리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