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이례적으로 조경가의 전시를 개최하는 이유가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1975)이자 국내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1980)인 작가는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을 설립(1987)한 이후 굵직한 프로젝트를 도맡다시피 했다. 예술의전당(1988), 호암미술관 '희원'(1997),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2007), 선유도공원(2001), 서울식물원(2014) 등이 모두 작가의 손을 거쳤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인문학 레지던시 두내원은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만난 작가는 "조경가인 제가 이곳에서 전시를 하다니 황홀하고 기적 같다"며 "조경은 건축의 뒷전으로 여겨지는데 후배들에게 길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도 전시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희원은 차경(借景·주변의 경치를 빌려옴)의 원리를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자생식물을 심었어요. 우리나라는 산천 그 자체가 하나의 정원일 정도로 아름다워서 담장을 낮게 해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이는 거죠. 정원의 정자 역시 두드러지지 않고 가장 좋은 경관을 살며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해요."
작가의 경기도 양평 자택에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키우는 실험실이 있다. 토종 야생화와 들풀을 직접 가꾸고 이해한 다음 자신의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이다. 환경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방문한 독일 국제가든쇼가 자생식물을 심어 자연주의 정원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가든쇼 내 한국 정원에 개나리, 원추리, 진달래 밖에 없었어요. 그때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널리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가는 어릴 적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백일장에 나갔다 하면 장원을 차지했다.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의 동료교사 박목월 시인이 아꼈을 정도다. 영문과 4년 장학생 입학을 포기하고 단식투쟁을 하며 농대를 선택할 때도 박 시인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일등공신은 박목월 선생이에요. 지금도 박 선생의 시집을 보면 눈물이 나요. 예나 지금이나 박 선생의 시에서 거의 대부분의 영감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