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주 공 띄우는 방법을 찾아라"
메이저 리그(MLB)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직전 경기인 워싱턴 내셔널스전에 나서기에 앞서 한 가지 숙제를 받았다. 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이 발사 각도를 키워 더 많은 장타를 쳐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정후는 10경기 39타수 1홈런 8안타 타율 2할5리를 기록 중이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최근 들어 빈번한 땅볼 타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정후가 지난달 3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터뜨린 데뷔 홈런을 제외하면 장타는 단 1번도 나오지 않았다. 나머지 안타 7개는 전부 1루타였다.
타구 발사 각도 역시 평균에 비해 현저히 작았다. 빅 리그 타자들 평균 발사각은 12.2도인데, 이정후의 평균은 4.1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장타를 못 치던 선수는 당연히 아니다. 이정후는 KBO 리그에서 뛰던 시절 통산 65개의 홈런을 쳤고 2루타 244개, 3루타 43개를 뽑아냈다. 작년 타구 발사각은 평균 16.9도에 달했다.
MLB에서도 자신이 가진 장타 능력을 선보여야 하는 숙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정후는 9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워싱턴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정후는 이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안타로 이어진 타구 발사 각도가 월등히 커졌고, 고대하던 장타까지 터졌다.
1회초 첫 타석에서 이정후는 워싱턴 선발 투수 트레버 윌리엄스의 5구째 체인지업을 밀어 쳐 좌익수 앞으로 향하는 1루타를 만들어냈다. 당시 기록된 타구의 발사각은 10도였다.
두 번째 타석에선 기다리던 장타를 뽑아냈다. 이정후는 3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서 윌리엄스의 직구를 정확히 공략했고 좌전 안타를 생산했다. 이는 MLB 진출 이후 첫 2루타로 이어졌다. 발사각은 17도로 기록됐다.
이후 5회에는 볼넷을 골라내 '3출루 경기'를 완성했다. 7회 마지막 타석에서는 2루 땅볼을 기록하며 이날 경기를 마무리했다.
최근 지적 받던 발사 각도와 장타에 대한 걱정을 잠시나마 씻어낸 경기였다.
지금까지 이정후는 발사각이 큰 장타보단 강하고 빠른 타구로 안타를 생산해 왔다. 특히 지난 2일 LA 다저스전에서 멀티 히트를 뽑아낼 당시 첫 안타는 시속 102.1마일(약 164km)로, 2번째 안타 102.9마일(165.6km)의 속도로 날아갔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정후의 평균 타구 속력은 93.4마일(약 150km)로 이 부문 MLB 상위 13% 안에 들었다. 강한 타구를 자주 만드는 '하드 히트 비율'도 54.1%로 상위 14%다.
이는 KBO 리그 시절부터 이정후가 갈고 닦아온 타격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정후는 지난 2020년 "힘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 발사 각도를 높여 공을 띄우는 것보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빠르게 날려야 큰 타구가 된다"며 "강하게 치려고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선구안, 콘택트, 빠르고 강한 타구를 날리는 능력은 이미 MLB에서도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이정후가 발사각을 키워 장타를 만드는 능력까지 보인다면 미국 현지를 더욱 놀라게 할 수 있다.
이정후는 한국 시각으로 10일 오전 10시 45분 시작되는 워싱턴전에도 선발 출격할 전망이다. 이정후의 방망이에서 높고 멀리 날아가는 타구가 나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