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가 사과받을 일일까…팬마저 겨눈 암행어사 제도[다시, 보기]

가수 아이유.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팬도 많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사랑받는 가수 아이유(IU)의 콘서트는 예매 경쟁이 몹시 치열하다. 공식 팬클럽 가입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선예매 때만 대기자 수가 가뿐히 십만 명을 넘길 정도다. 수요는 폭발하고 공급(좌석 수)은 한정된 상황, 처음부터 '극심한 불균형'이 예고돼 있다.

인기 있는 공연은 명백히 돈이 되기에, '대신 표 구해드립니다' 하고 자처하는 각종 대리 티케팅 업체와 개인이 판친다. 취소 표를 기다려도 좀처럼 자리는 안 나온다. 티켓 거래 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는 정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웃돈(프리미엄)이 붙은 티켓이 널렸다.

'암행어사 제도'는 이처럼 위법하거나 편법을 쓴 티켓 부정 거래를 줄이고자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에서 도입한 제도다. 공식 예매처를 통하지 않거나, 정가보다 현저히 비싸게 파는 표를 신고하면 그에 따른 포상을 받는 방식이다. 표가 없으면 신고해 회수된 표를 받는데, 공급자(주최 측)-실수요자(관객)와는 무관한 제3자가 부당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해당 제도를 활용해 아이유 콘서트를 보러 간 관객의 후기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고, 암표 사기가 극성인 와중에 고안된 소속사 대처의 바람직한 예로 다수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의로 시작돼 어느 정도 순기능을 발휘했던 '암행어사 제도'에도 빈틈은 있었다. 부정 거래 의혹을 받아 소명 절차에 나섰으나 실패해 결국 공연을 보지 못한 아이유 팬 A씨가 블로그를 통해 본인 사례를 공론화하자, 주로 칭찬을 들었던 제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A씨 사연을 요약하면 당시 예매·입금 내역, 티케팅을 도와준 친구와의 메신저 대화 내역, 팬클럽 가입 여부 등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소상히 소명했음에도 본인 확인에 실패했다. 결국 부정 거래자로 지목돼 공식 팬클럽에서 제명됐으며 환불 처리도 매끄럽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할 수 있고 오해를 자초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이때 이담 측은 팬의 피해 사례를 묵살하지 않았다. 공연과 관계된 다양한 주체가 모여 자초지종을 확인했고, 사과와 개선 방안을 포함한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이담 측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실책했다. 피 튀기는 티케팅에 나서는 예매자의 현실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부당한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가족·친구·지인의 도움마저 부정 거래로 규정해 입장을 통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평소 팬들과 가까이서 소통하며 불편과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고 애썼던 아이유와 그 소속사라고 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대처였다.

"여기서 '용병'이란 의미는 개인의 사정으로 인해 본인 대신 티케팅에 참여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을 뜻하며, '대리 티케팅' 의심으로 분류되는 키워드입니다. (…) 담당자가 '대리 티켓 여부'를 묻는 말에 팬분은 '친구가 대리로 잡아준 것이 맞다'고 2~3차례 시인했습니다. 현장은 팬분 외에 다른 팬분들이 옆에 자리하고 있었고, 당사자가 인정했기에, 당초 특이사항이 없다면 관람을 하실 수 있도록 하려 했던 상황이 의미 없게 됐습니다." (4월 3일자 이담엔터테인먼트 공지)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로그 글을 보면 A씨가 아이유를 좋아하고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한 명의 팬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랬기에 소명 자료를 만들었고, 부정 거래를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그토록 애쓴 것이 아닐까. 준비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가 무엇인지, 소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이렇다 할 안내도 없었다. 그저 개인은 홀로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 모든 과정에 대처해야 했다.

각종 자료를 증빙 가능하도록 수집하고, 증언해 줄 친구가 있고, 이를 취합해 정리할 수 있었음에도, A씨는 끝내 부정 거래 의심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연에서 배제됐다. 제보만 있다면 '부정 거래자' 의혹을 받은 개별 당사자의 처지와 상황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모든 설명 책임을 지우는 것, 이게 '암행어사 제도' 도입 취지였을까.
 
이담 측이 펴는 논리대로라면 아이유 공연, 혹은 이담 주최 공연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예매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사실상 '온라인 예매'로 일원화된 예매를 어려워하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정보 취약계층이 저절로 소외되는 것은 물론이다.

A씨 사연과 그 후 이담 측 공지가 나왔을 때 많은 K팝 팬들이 자기 일처럼 황당해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팬은 지나치다고 할 만큼 까다로운 소명을 피할 수 없었는데, 공지 내 허점이 지적돼도 의문을 해소하고자 하는 이담 측의 노력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A씨의 표는 재판매·재배부되지 않았고 자리도 비어 있다고 주장했으나, 해당 자리가 차 있자 그때그때 자리를 옮기는 '메뚜기 관객'이 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해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기존 아이유 콘서트에서도 과도한 '본인 인증'의 문제점을 비판한 과거 글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또 다른 예매자는 미성년자인 아이의 입장을 위해 신여권과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준비해 갔으나 여권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콘서트도 못 보고 환불도 못 받았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지난 2019년 아이유 공연 당시 주최 측은 신분증과 관련해 △여권 유효기간과 상관없이 발급일로부터 3년 미만으로 예매자 얼굴 식별이 가능해야 한다고 제한을 두었고 △미성년자의 경우 청소년증이나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발급한 생년월일 및 얼굴 식별이 가능한 학생증, 주민등록등본 또는 건강보험증, 부모님과 본인 이름이 들어간 주민등록등본 또는 가족관계증명서와 부모님 실물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첫 공지가 나온 지 6일 만에, 이담 측은 '암행어사 제도 폐지'를 알렸다. 제도의 부작용과 피해 발생 사실을 인정하고, 팬들의 제언을 토대로 해 개선책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해당 제도로 인하여, 더 이상 억울한 팬이 단 한 분이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내용에 대해 당사 내부적으로 소상히 살핀 뒤, 적용 기준에 대해서 신중히 논의 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티켓 예매 과정에서 피해입은 당사자 팬분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상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팬들이 부당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와 구체적인 개선책이 돋보였으나, 이전에도 벌어진 비슷한 사례에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대신 독특한 구절이 있었다. 팬들에게 사과하면서, "이번 일로 당사에게 실망하고 마음 아팠을 아티스트 본인에게도 사과를 전한다"라며 별안간 아이유에게도 사과한 것이다.

콘서트 표를 둘러싼 잡음과 갈등이 빚어졌을 때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완벽히 분리될 수 있을까. '본의 아니게' 팬에게 상처를 준 것에 아이유의 마음이 아팠을 수는 있어도, '사과받아야 할' 위치에 아이유를 두는 것은 의아하다. 아이유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재발 방지'를 위해 고민하고 실질적인 개선에 이르도록 힘써야 하는 엄연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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