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중도해지 부탁해요…아들이 지하실에 갇혀있어요."
영업시간이 채 되기도 전인 지난 1일 오전 8시 40분. 50대 남성 A씨가 평창 대관령 한 은행에 방문해 다급히 예금 계좌를 중도 해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초조한 얼굴로 현금을 인출해달라는 말에 의아했지만, 이제 막 은행 문을 연 직원들은 A씨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긴 뒤 분주히 영업을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와 계속 통화 중이었던 A씨는 전화도 끊지 않고 직원에게 휴대전화를 맡기며 충전을 부탁했다.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대관령 신협 본점 이찬건(33) 서기는 순간 A씨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이에 이 서기는 곧장 창구에 이 사실을 알렸고, 직원들은 A씨를 불러 예금 계좌 중도 해지 사유를 물었다.
그는 "전세자금 때문"이라고 짧게 답했고, 직원들은 "예금 만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중도 해지보다는 대출받는 게 더 이익"이라고 안내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후 조영란(57) 전무가 A씨를 은행 밖으로 이끌며 현금이 필요한 진짜 이유를 물었다.
"누군가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아들이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지금 지하실에 갇혀 있다고요. 그래서 지금 당장 현금 2천700만원을 갚아야 해요."
그제야 A씨는 전화금융사기범에게 협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조 전무는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A씨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들과 전화 연결을 시켜줬다.
이후 조 전무는 은행 건너편에 있는 대관령 파출소에 방문해 곧장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출동한 대관령 파출소 정일 경감과 류영경 순경은 A씨 휴대전화에 해킹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A씨 휴대전화에는 이상이 없었다.
A씨 아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핀 결과 아들의 휴대전화에 해킹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었다.
경찰은 아들이 최근 문자로 온 링크 주소를 통해 애플리케이션 한 개를 내려받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족과 지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하고, A씨 아들에게 집과 가까운 경찰서에서 관련 피해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평창경찰서는 보이스피싱 범죄 직전 피해를 예방한 조 전무와 이 서기에게 감사장과 신고 보상금을 수여했다.
또 정 경감과 류 순경에게도 표창을 수여했다.
신성훈 서장은 5일 "세심한 관심과 신속한 신고로 피해를 예방했다"며 "앞으로도 금융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과 검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